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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비평가가 뽑은 2007 올해의 좋은시』中 / 《현대문학》(2007)


        아틀란티스

         윤성택

        바다 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
        미끄러운 물속의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두려움을 데리고
        순순히 나를 통과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
        막막한 주위를 둘러본다 그곳에는 거대한 유적이 있다
        폐허가 남긴 앙상한 미련을 더듬으면
        쉽게 부서지는 형상들
        점점이 사방에 흩어진다 허우적거리며
        아까시나무 가지가 필사적으로 자라 오른다
        일생을 허공의 깊이에 두고 연신 손을 뻗는다
        짙푸른 기억 아래의 기억을 숨겨와
        두근거리는 새벽, 뒤척인다 자꾸 누가 나를 부른다
        땅에서 가장 멀리 길어올린 꽃을 달고서
        뿌리는 숨이 차는지 후욱 향기를 내뱉는다  
        바람이 데시벨을 높이고 덤불로 끌려다닌 길도 멈춘
        땅속 어딘가, 뼈마디가 쑥쑥 올라왔다 오늘은
        차갑게 수장된 심해가 그리운 날이다
        나는 별자리처럼 관절을 꺾고 웅크린다
        먼데서 사라진 빛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기억에도 그런 망각의 대륙이 있을 법하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우리의 의식은 거대한 빙상 같은 무의식의 일부가 아닌가? 이 시는 사라진 기억의 대륙을 실감나는 상상으로 재현한다. 해저로 가라앉은 거대한 유산처럼 기억의 수면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기억들, 잡히지 않지만 막연하게 그리운 기억의 잔재들을 돌아보게 한다. 잡힐 듯 부서지는 유적처럼 닿기도 전에 가라앉는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그려진다.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이 오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잔존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기억의 유적은 그칠 줄 모르는 그리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 이혜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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