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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 3쇄

2019.03.19 15:35

윤성택 조회 수:7024

      

어둑한 물류창고 속

남겨진

마지막 시집이 빠져나오는데

6년이 걸렸군요.

당신의 책꽂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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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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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도 어디쯤에서

한쪽 눈을 감고 이곳 장면을 저장해간다

 

배터리가 다 된 핸드폰을 끄면 아늑한 무덤이다

 

어느 민박집에 두고 온 칫솔이 잊혀지지 않는다

칫솔모가 눌린 채 닦아내고 있을 한때의 적요

 

과속 방지턱이 다가올 때마다 글자는 삐걱거리지만

물결 소인(消印)처럼 수첩은 어디론가 페이지를 열어둔다

 

오래된 소읍에서는 바람이 묵어간 뒤뜰에도 수취인이 있다

 

떠나지 못한 날들 속에서 문장은 위독해지고

카메라는 나의 한쪽 눈을 목록으로 만들 것이다

 

차창 커튼을 스치는 소리는 여행의 첫 줄

누군가 뒤척인다

 

다가오는 나무들은 저를 흔드는 바람에

빛을 털어내다 뒤편으로 사라져간다 요약하면

어떤 간이역에서는 그늘과 슬픔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

 

내 눈으로 바라본 희붐한 새벽을 편지라 명명할 때

그 주소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시간의 오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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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속 80,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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