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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쓴 서정시(『오늘의 문예비평』 2002 겨울호 발췌)

* 특집 「70년대산 시인의 성과와 한계」


김양헌 (문학평론가, hun0157@hanmail.net)


2. 도시, 사랑의 조건

   "지옥의 진지함"은 전통적 서정시를 쓰려던 젊은 시인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1970년대의 인문학적 인식과 1980년대의 사회과학적 실천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넘어서면서, 복잡다단한 1990년대의 시적 지형도를 간파해야만 시단에 들어서는 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서정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중략)……

  이러한 상황은 시인들의 작업에 그대로 반영된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주요 잡지에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을 보면, 강정, 김경후, 김민정, 김새나리, 김선우, 김언, 김은경, 김중, 김종태, 김종훈, 김지혜, 김참, 김태형, 김행숙, 류외향, 류형창, 문태준, 박경희, 박성우, 박은희, 박진성, 박태건, 박한나, 서정학, 손택수, 신용목, 신유야, 신해옥, 신혜정, 안현미, 여정, 유형진, 윤성택, 윤예영, 윤이나, 이수정, 이승원, 이영주, 이은림, 이응준, 이인자, 이재훈, 이준규, 이창수, 이철성, 이혜진, 장영인, 장이지, 장승진, 장희정, 정영, 정재학, 조동범, 진수미, 진은영, 최금진, 최승철, 최진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자료를 갖추지 못해 빠뜨리거나 출생년도를 밝히지 않아 넘어간 경우도 있겠는데, 이들 50여 명 중 서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인은 문태준, 박성우, 손택수, 윤성택, 최갑수, 최승철, 최금진 등 대략 10명 안팎이고, 대부분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 쪽으로 기울고 있다. 시집을 낸 시인이 강정, 김경후, 김선우, 김중, 김참, 김태형, 문태준, 박성우, 박한나, 서정학, 이응준, 이철성, 최갑수 정도로 대부분 시인들이 아직까지 발표량이 적어서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존재론적인 성찰까지 포함하더라도 전통적 서정시는 그다지 많지 안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은 신서정주의, 정신주의, 생태주의 등의 이름으로 전통적 서정시가 새롭게 대두하던 시기였다. 민중시와 해체시가 크게 융성한 1980년대에도 양적, 질적으로 전통적 서정시가 훨씬 뒤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론의 부재, 사회적/문학적 명분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전통적 서정시가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동구권의 몰락과 문화적 가치의 재인식,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와 생태주의적 대응으로 1990년대에는 전통적 서정시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농촌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오래된 미래"로 등장하며, 자연 생태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에콜로지/우주공동체 이념이 흥성하고, 자본의 속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행시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도 아랑곳없이, 1970년대생은 이응준, 김태형, 강정 등 출발부터 모더니즘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현저하였다. 1970년대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TV와 함께 유년을 보냈고 PC와 더불어 성년을 맞은 새로운 문명의 후예들은, 비록 전통적 서정을 노래한다 해도 도시적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터, 일상생활이 대부분 도시에서 이루어졌으니 서정의 양상 또한 달라질 수밖에. 우선 서정의 공간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한다. 공간의 변화는 소재/제재를 바꾸게되고, 자연스럽게 정서적 내용의 변혁을 초래하였다.

        PC방 아래 미닫이문을 열면 목도장 파는
        노인이 오래된 금성 라디오에 귀 대고 앉아 있다
        손마디를 조심하며 돋보기 안경을 눈에 끼운다
        맞은 편 길에서 포크레인이 하수도관을 올려
        땅에 묻는다 내 이름은 많은 입술을 떠돌았지만
        길을 찾지 못 했다 목도장의 길 위에서 나는
        반듯해 질 수 있을까 노인의 조각칼이 예리하게
        목도장을 파고든다 첨단 시대의 급소를 겨누듯
        노인의 눈이 예민하게 움직인다 당구장
        신축공사 중인 건물에서 시멘트 조각이 떨어진다
                                ―최승철, 「목도장 있는 길목」 부분


        굉음으로 앞바퀴 들어 달리다보면
        나를 앞서간 사랑까지 가닿을 수 있을까
        흘깃, 덜컹거리는 가스통을 돌아본다
        매여 있는 것은 늘 괴롭다
        가끔씩 물보라로 튀어 오르는 잔돌멩이들
        길의 방점처럼 귀퉁이에 찍힌다
        일순 번개가 치울린다 몸을,
        납작 엎드린다 발기된 엔진이 뜨겁다
        生 위에 길들여진 길이 끝날지라도
        점화되지 못한 청춘을 싣고
        나는야 폭탄처럼 달린다
                                ―윤성택, 「청춘은 간다」 부분


  최승철과 윤성택은 도시의 일상적 삶을 소재로 삼고 있다. PC방, 포크레인, 시멘트 건물, 자동차 굉음, 가스통, 엔진 등은 자본의 톱니들이다. 이 톱니바퀴는 가속장치를 내장하고 있어서 가속도는 무한히 증가할 뿐이다. 도장 파는 노인과 가스 배달원은 바로 이 속도에 치인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목도장 있는 길목」에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소멸해 가는 존재의 상징으로서 "목도장"이 등장한다. 모든 결제가 카드로 이루어지고 컴퓨터가 신원을 확인하는 시대에 목도장으로 뭘 어쩌겠는가. 예리한 조각칼로 "첨단 시대의 급소를 겨누"어 보지만, 자본의 급류에 브레이크 걸 방도가 없다. 노인이 있던 자리에는 결국 "새로운 길과/ 건물이 들어선"다. 「청춘은 간다」는 현실의 속도를 뒤쫓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물화된 인간, 자유 의지를 빼앗기고 체제에 질질 끌려가는 자본주의적 일상의 실상을 드러낸다. 사랑의 시대는 앞서 지나간 뒤라, 인간에게는 오로지 "막다른 곳"을 향해 "폭탄처럼 달"리는 일만 남아 있다. "달리지 않는 것들은 미끄러운 시선 밖으로/ 줄기차게 밀려"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더니즘 계열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모더니즘은 현실을 자의식의 용광로에 녹여 변형된 모습으로 전경을 세운다. 사실의 객관적 양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현실이 굴절되는 방향과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말들의 소용돌이가 시적 개성을 이끌어간다. 반면, 윤성택과 최승철의 작품들은 사실성을 중시한다. 무수한 사소사에서 어떤 것을 제재로 선택하느냐,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여 조직하느냐에 따라 시적 위상이 달라진다. 소멸해가는/소외된 것들에 대한 쓸쓸한 애상이 그려질 수도 있고, 따뜻한 사랑의 정서나 현실 비판이 담기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간에 리얼리티는 훼손/변용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과정에서 생략과 과장을 통해 강화된다. 1970년대 참여시의 후손이며, 1980년대 초 이하석(1984년의 『金氏의 옆 얼굴』은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김혜순 등의 시집들과 함께 당시로는 상당히 모던한 예에 속하는데)등에 의해 변주되다가 1980년대 후반의 도시시(논의가 분분한 개념이긴 하지만), 1990년대의 박철로 이어지는, 도시의 뒤안길에 피어난 서정시. 문명비판을 주제로 담고 있으나,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먼 객관적 화법.

  우리는 흔히 전통적 서정시라고 편하게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개념이 참으로 막연한 용어다. '전통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따라 내포가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서정시는 모더니즘에 비해 대체로 정제된 형식, 절제된 목소리를 갖고 있다. 행위의 주체가 분명히 존재하며, 대상에 대한 주체의 관점이 일관성을 유지한다. 다르게 말하면, 타자에 대한 사랑이 가능한 양식, 유토피아를 설정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주체가 분열/해체/소멸되거나 대상과의 구분이 불투명해지는 1980년대 이후의 모더니즘은 타자와의 소통을 차단하는 양식이다. 자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타자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배척하며, 자학적/냉소적 목소리가 주조음을 이룬다. 모든 관계는 단절/소통불능에 빠진다. 모더니즘의 세계관/이데올로기는 '혼자 있음'(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에서 출발한다. 나와 타자를 하나로 엮는 '우리/사랑'이라는 개념은 소용이 없다. 그것은 다만 사상적/철학적 배경으로서 작품을 쓰는 행위 자체의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문면에 직접 드러나는 일은 드물다. 낯설게 하기의 언어 유희나 냉소적인 풍자에도 주체는 대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우리 시대의 모더니즘은 근본적으로 절망의 양식인 셈이다. 그러나, 전통적 서정시에서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사랑/깨달음의 체득으로 나아가며, 세계의 자아화를 통한 아이덴티티 형성이 시의 근간을 이룬다. "나"/화자/시인과 도장 파는 노인은 동질적인 존재다. 시인은 가스 배달원의 삶을 끌어안은 뒤에야 비로소 그를 퍼소나로 내세운다. 이것은 소외된/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연민이지만, 그 연민은 궁극적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솟아나는 감정이다.

  이상(李想) 같은 예외가 있긴 했으나 1930년대 모더니즘은 대개 깔끔한 이미지즘으로 나타났고, 1960년대 후기 모더니즘에서도 구조의 파편화나 주체의 약화로 인한 심미적 변화는 미미하였다. 그러나, 김수영, 신경림, 김광규와 이하석 등이 시적 언어에 대한 인식을 서서히 바꿔놓고, 도시가 삶의 양식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게 되자 사정은 달라진다. 1980년대 이후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화법이 비일상적으로 심하게 뒤틀린 까닭에, 윤성택과 최승철은 전통적 서정시의 어법에 훨씬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가까운 모태를 찾으면 참여시/민중시의 리얼리티에 줄을 댈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떠나서, 이런 유형의 작품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분류하기가 곤란해서라도 전통적 서정시에 넣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물론 어떤 경향에 속하느냐, 어떻게 분류하느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분류나 구분은 작품 이해의 편의를 위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어줄 때 의미를 지닌다. 윤성택과 최승철의 시를 전통적 서정시에 포함시키는 것은, 표현된 삶의 외형은 다를지라도 근본적인 정서는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꿈을 지닌 양식이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저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윤성택, 「산동네의 밤」부분


        李君, 내 방은 한낮에도 형광등 불빛이 필요하다네
        이렇게 출근하지 않은 아침 아무에게나 전화해서
        사랑한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 들려주고 싶었다네
        이불을 걷을 때 뭉개져 나오던
        귀뚜라미의 다리에 내 눈은 왈칵 살가움을 느꼈네
        죽고 싶다거나 외롭다는 말은 구겨지기 쉬운
        담뱃갑의 모서리처럼 순간적이었네  
                                    ―최승철, 「편지에게 쓴다」부분


  현실은 여전히 "한낮에도 형광등 불빛이 필요"한 "어둠"의 세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다시피, 자본의 제국은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 욕망의 가속도는 끝이 없고, 지구는 빨게 시들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거시적 국면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은 그 자체가 또다른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고, 구체적 실천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시적 디테일을 보면 이 세계는 상반되고 상보적인 무수한 현상들로 가득하다. 따뜻하고 차고 맵고 신 애환과 애증이 올망졸망 모인 것이 삶이다. 현실에 대한 개체의 응전 또한 제각각이다. 이런 복잡미묘함 자체가 인간의 생물학적/사회적 존재의 조건인지도 모른다(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개체가 아니라 종 전체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진화과정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심지어 분열적이고 이중적이 사유가 발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신다윈주의적인 학설에 의하면). 밝음과 어둠은, 현실뿐만 아니라 개체의 몸 안에에도, 여러 차원으로 뒤엉켜 있다. 어둠의 한가운데에서 반짝이는 빛, 그것은 인간이란 종이 수만, 수백만 년을 현실과 부딪치는 과정에서 획득한 유전 형질이 아닐까. 시이은 "요란한 시대가/ 계속될수록 나를 흔드는 이 울림"(윤성택, 「경운기를 따라가다」)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이 "누군가 건너가는 먼 불빛", "사랑한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되도록 언어를 직조하는 존재다. 1990년대의 우리시가 절망/죽음의 나락에서도 희망/생명의 숨결을 잃지 않았던 것은, 가슴 깊이 내재된 이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은 흔히 희망의 노래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하늘을 나누어 이고/ 서로 넉넉히 몸"(윤성택, 「이른 봄산에 오르다」)을 맞댐으로써 "더러움을 나눠 가지며/ 조금씩 깨끗해"(「그릇에 관하여」)지려는 소박한 마음은 "기계와의 거래를 계속하고" "기계 속으로 일생을 전송시키"(「365일 현금자동 지급기」)는 현실적 삶에 가로막히기 십상이다. 그것이 헛된 감상으로 추락하거나 1970년대의 인문주의적 사유로 퇴행하지 않으려면 그만한 내적 필연성을 갖추어야 하며, 당대의 실상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 또한 밝다는 고전적 알레고리를 지탱해주는 도덕적 당위와 질박한 구조가 지리멸렬한 이 시대에도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보다 정치한 시적 논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방법론적 천작이 없으면 새로운 인식이나 감각도 의미가 없어진다.


3. 서정 그 불가해한 지속

  윤성택이 대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희망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비해, 최승철은 어둠의 명도를 낮춤으로써 별빛의 상징성보다 객관적인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중략)……

  그러나, 1970년대 생 시인들은 아직도 앞 세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그들을 넘어서는 길뿐이다. 저 태화리 밭두렁의 순하디 순한 소처럼 "길은 사랑할 채비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길 내는 법 없다"(문태준,「굴을 지나면서). 그 길이 훤히 보일 때까지, 캄캄한 "어둠 속을 제 몸으로 밝히며 가는"(최금진,「소들은 울지 않는다, 웃는다)반딧불이처럼, 사랑의 길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나가는 수밖에.

                                        ―『오늘의 문예비평』 2002 겨울호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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