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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 동인 작품론>
고독한 자들의 합창

강경희(문학평론가)


1.
시천 동인들의 출생 년도를 보니 대개가 70년대 이후다. 젊다. 그런데 젊은 그들의 시에서 온통 죽음의 냄새가 난다. 삶이 죽음과 그렇게 가까이 있단 말인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젊음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죽음이란 인간을 유혹하는 강력한 힘을 내장하고 있는 것일까?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죽음의 문제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에게서 가장 쉽고도 분명하게 발견되는 죽음에의 집착, 죽음에의 충동, 죽음과의 조우, 죽음에의 탐색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왜 죽음이어야 하는가?’라는 해답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나는 예전에 한 지면에서 <70년대 산 젊은 시문학의 성과와 한계>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70년대 이후에 출생한 몇 몇 시인들의 시를 검토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들의 시가 공통적으로 ‘강렬한 죽음에의 질주’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의 강렬함 때문에 나는 거의 질식당할 것 느낌으로 시를 읽어 내려가곤 했다. 오늘의 삶이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그들은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우리의 삶 한 가운데를 막강하게 점령하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 아니 ‘죽음의 실체’를 거부할 수 없을 때 시인들은 죽음으로써 삶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본 지면에서 이전의 시대와는 뚜렷한 차이를 지닌 90년대 이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시천 동인들의 시를 분석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말해 오늘의 변화된 삶의 조건이나 인식론적 지평 위에서 그들의 시를 재단하는 것은 시천 동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시적 특성을 하나의 틀로 통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 동인들의 시는 특정한 경향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각자의 개성적인 문법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물처럼 모여 있으나 시의 속성처럼 외로울 것이다.”라는 그들의 말처럼 나는 그들 각자가 외롭게 번뇌하고 싸우고 꿈꾸어 왔던 것들이 무엇이며, 그 무엇이 지니고 있는 진정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글은 그들 시에 대한 일종의 각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중략>

윤성택은 시의 이미지를 잘 조각해내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마치 한 장의 그림을 보듯, 하나의 사건을 보듯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묘사한다. 그만큼 그가 시를 직조해 내는 기량을 지녔음을 뜻한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의 시에서 많이 발견되지 않았던 ‘도시적 정서’라 할 수 있다. 특히 <장안상가>, 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어두운 도시의 이미지는 소외된 자들의 상처와 아픔,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방황하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옥상 균열은 건물의 눕고 싶은 표정이었다
        부러진 안테나가 금의 끝점에 꽂혀 있었고
        입주민 양미간으로도 쉽게 금이 번졌다
        다시 펴지지 않는 금은 우울한 인상으로 통했다
        주파수를 잃은 TV는 캄캄한 우주를 수신했다
        밤에 떠난 사람도 많았으나 건물 우편함에
        배달된 청구서는 그 여행을 뒤따라가지 못했다
        건물은 너무 오래 서있었으므로 저녁은
        쉽게 피곤했고 마을버스는 때때로 오지 않았다
        지하창고에서 입술을 나눈 남녀는 보풀이 붙은
        옷을 서로 벗겨주었다 농밀하게 수놓는 체위처럼
        여전히 건물에서는 재봉질이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 현관 바닥에 실 뭉치들을 힘껏 내던져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자해로 매듭 되기도 했다
        야근을 마친 충혈된 눈에서도 균열의 뿌리가
        내려왔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지하창고에서
        툭툭 불거져 나온 철근들이 가로수 잎을
        녹슬게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구청직원은
        딱지를 붙이며 건물이 헐릴 것을 예고했다
        건물주가 풍으로 쓰러진 건 실핏줄 때문이었다
        온 신경을 다 드러내놓은 TV가 납땜된 뒤
        일층 전파사에 진열되었다 천연색 담쟁이가
        건물 균열을 타고 자꾸만 뻗어 올라갔다


        
                                                         - <장안상가> 전문

장안상가에 드리워진 풍경은 전형적인 소시민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옥상의 균열”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노동에 지쳐 ‘피곤한 저녁’과 오지 않는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창고”에서 “보풀이 붙은/ 옷을 서로 벗겨주”는 “남녀”, “야근을 마친 충혈된” 사람들의 눈, 그들은 모두 곧 헐리게 될 건물(장안상가)에서 불안하고 힘겨운 생활을 하는 소시민들이다.
그러한 소시민의 불안정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어가 바로 ‘균열’이라는 말이다. ‘균열’은 갈라짐이다. 시인은 이 갈라짐이란 현상을 ‘건물의 모습에서’ ‘인간의 몸’으로 그리고 다시금 인간 존재의 내면의 ‘불안 의식’으로 확대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상의 균열”을 보면서 시인은 “건물의 눕고 싶은 표정”라 말한다. “눕고 싶다는 것”은 너무 오래 서 있었다는 것을,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건물 뿐 아니라, 그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입주민 양미간으로 쉽게 금이 번졌다”, “충혈된 눈에서도 균열의 뿌리가/ 내려왔다”, “건물주가 풍으로 쓰러진 건 실핏줄 때문이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삶의 밑바닥까지 거센 세파에 점령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의 힘겨운 일상을 인간의 ‘몸의 균열’을 통해 보여준다.
‘몸의 균열’은 ‘정신의 균열’과 ‘영혼의 균열’을 구체적이며 생동하게 만드는 비유이다. 정신과 영혼까지 저당 잡힌 채 무방비의 삶을 강요받는 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그저 묵묵히 오지 않는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일상의 포로가 되거나, 혹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어두운 지하창고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아니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자해”로 자신의 생을 저주하는 것이다. 그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결국 그들이 처할 수밖에 없는 삶의 운명은 동일하다. 즉 균열의 최후는 허물어지는 것이다. 윤성택은 이것이 바로 소시민들의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결정된 삶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야말로 소시민들의 고통의 근원이라는 지적이다.
윤성택의 <장안상가>는 소시민들의 기구한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익히 반복되었던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힘은 슬픔을 따뜻함으로 만들 줄 아는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자들, 버려지고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의 생에서 그는 ‘살아감이란 비루함을 견디는 것과 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애’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 시의 마지막에서 “천연색 담쟁이가/ 건물 균열을 타고 자꾸만 뻗어 올라갔다”라는 말은 바로 그러한 삶의 균열을 애써 메우려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
'Buy the way'는 이전에 발표하였던 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시간 의식’이다. 그는 24시간 동안 운영되는 편의점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조작되고 인공화된 시간의 문제에 집중한다. “뒤틀린 시간”, “마킹된 시간”, “타이머로 알리바이를 궁리”하는 시간, “광속보다 빠르게 질주”하는 시간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변형되고 왜곡된 시간이다. 따라서 'Buy the way'에서 시인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폭력적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저울질하며 살아야하는 현대인의 분열적인 정신세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의 폭력화된 시간의 문제를 거론하는데 있어 이 시의 후반부는 다소 긴장력을 상실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도시를 송두리째 부셔버리고 싶어하는 청년의 심리,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청년의 일탈은 예속화된 시간의 문제를 보다 집요하게 성찰하고 비판하려는 의지로 읽히기보다는 충동적이며 반항적인 삶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중략>

젊다는 것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모험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모험은 진정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시천 동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그들의 시가 실험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의 시가 대부분 전통적인 서정주의에 많이 기대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시천 동인들이 지니고 있는 시적 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특이성이 그들의 시세계를 제한하는 한계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그들이 시가 보다 다양한 방향과 영역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70년대 산 시인들은 보다 다양한 문화적 자장 안에서 자라났던 세대이다. 그런 만큼 세계를 보는 그들의 눈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천 동인들의 시가 ‘자연’ ‘일상’ ‘가난’ ‘죽음’의 문제로 집중된 시선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인식의 모험을 감행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상상력이란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하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이러한 인식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들의 시는 보다 풍성하고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어 낼 것이라 믿는다.


* 강경희 평론가 약력
   숭실대 석사 및 동대학원 박사 수료
   현재 숭실대, 호서대 강사
   2001년 문화일보 신춘 문예 평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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