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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상가 - 김홍진 평론가 계간시평

2004.11.21 11:30

윤성택 조회 수:4017 추천:111

《문예연구》2004년 가을호 “아 계절의 문학” 시평 中

  
신성과 문명
- 식물적 상상력과 도시적 감수성

김홍진 (문학평론가, 한남대 강사)


5. 빌딩숲의 서정

  우리시대 가장 중요한 시적 사유 가운데 하나는, 도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도시적 일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도시 문명 속의 일상적 삶에 대한 풍자나 날카로운 비판 내지는 자각의 반성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물화되는 가치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다. 산업 자본주의 도시 문명이 잉태하는 인간 소외와 가치의 물화는 도시적 삶의 지배적인 현상이다. 보통 산업 자본주의의 도시적 일상에서 상품이나 화폐를 신비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으로 숭배된다. 인간이 물질에 의해 지배받는, 그것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와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위협하는 요소다. 그런데 한 시인에게 비인간화와 물신주의의 세계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인간성을 자각케 하는 소외감은 그렇기 때문에 물신화된 세계에 대한 저항의 양식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상품 논리와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존재이기를 거부하고 물질적 동물이기를 거부하는 도시적 삶의 감수성이다. 이렇게 볼 때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성은 예술의 한 전형을 이루는 것이다. 예술은 현실 세계의 부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로써, 이 부정성은 산업 사회의 비인간적인 물신화와 문명에 대한 맹목적 신앙에 대한 인간적 자각이며 저항이다.

         장안상가

         옥상 균열은 건물의 눕고 싶은 표정이었다
        부러진 안테나가 금의 끝점에 꽂혀 있었고
        입주민 양미간으로도 쉽게 금이 번졌다
        다시 펴지지 않는 금은 우울한 인상으로 통했다
        주파수를 잃은 TV는 캄캄한 우주를 수신했다
        밤에 떠난 사람도 많았으나 건물 우편함에
        배달된 청구서는 그 여행을 뒤따라가지 못했다
        건물은 너무 오래 서있었으므로 저녁은
        쉽게 피곤했고 마을버스는 때때로 오지 않았다
        지하창고에서 입술을 나눈 남녀는 보풀이 붙은
        옷을 서로 벗겨주었다 농밀한 체위처럼
        여전히 건물에서는 재봉질이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 현관 바닥에 실 뭉치들을 힘껏 내던져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자해로 매듭 되기도 했다
        야근을 마친 충혈된 눈에서도 균열의 뿌리가
        내려왔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지하창고에서
        툭툭 불거져 나온 철근들이 가로수 잎을
        녹슬게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구청직원은
        딱지를 붙이며 건물이 헐릴 것을 예고했다
        건물주가 풍으로 쓰러진 건 실핏줄 때문이었다
        온 신경을 다 드러내놓은 TV가 납땜된 뒤
        일층 전파사에 진열되었다 천연색 담쟁이가
        건물 균열을 타고 자꾸만 뻗어 올라갔다

                                ― 윤성택, 「장안상가」전문, 『문예연구』여름호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상가나 백화점은 물질적 쾌락을 보장하는 조건이며, 도시적 경험의 기본적 양식을 제공해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들 공간은 도시적 삶의 풍요로움과 그 물질적 풍요의 신화를 보장해주는 기호로 작용한다. 윤성택 「장안상가」는 이러한 기호적 가치와 이미지를 지닌, 자본주의적 행복의 이데올로기를 깨어버리고 있다. 도시적 삶과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상가의 이미지와 상징 가치를 깨어버리고 거기에 균열이 가 금방 무너져 버릴 붕괴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는 상가가 지닌 그 화려한 이미지를 깨고 그 안에 깃든 붕괴하는 인간 욕망의 징후를 발견하고 있다.
  윤성택의 시는 밀도 있는 이미지에 의해 구축되고 있는데, 사실적 소묘와 이미지의 연쇄가 돋보인다. 사실적인 소묘를 통해 상가의 풍경과 그 속에 깃든 삶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보통 도시적 삶의 범주에서 느끼는 산뜻하고 풍요로운 상가의 임지는 곧 뒤집혀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과 우기감을 조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도시적 일상에서 갖게 되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 안락이라는 보편적 관념을 허물어버린다. ‘상가 건물에 난 균열’과 거기에 세 들어 사는 ‘입주민의 양미간에 번진 금’, 그리고 ‘풍으로 쓰러진 건물주의 실핏줄’을 통해서 서서히 금이 가 곧 쓰러질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다.
  그리하여 그 언어들은 그 상가 건물에 이리저리 난 균열처럼 산만하게 출렁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산만하다싶은 언어의 출렁거림에 시적 구조를 부여하는 것은 하나의 화두에 의해 끊임없이 연쇄되는 이미지의 연상에 의한 것이다. 이미지의 연상은 매우 통일적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옥상 균열, 양미간의 금, 재봉질, 실 뭉치, 풀리지 않는 실마리, 충혈된 눈, 실핏줄, 신경, 담쟁이’로 이어지는 균열이 주는 줄(선)의 이미지를 통해 구축된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쇄에 의해서 물질적 풍요와 행복과 쾌락의 이미지는 ‘우울한 죽음의 인상’으로 남는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저녁(밤, 깜깜함)’, 떠남, 쓰러짐, 헐림‘ 등의 언어와 ’않았다, 못했다‘ 등의 부정적 언어 구사를 통해서 위기감과 불길한 정조를 자아내는데 조력한다. 그러한 불길한 정조는 마지막으로 “천연색 담쟁이가/ 건물 균열을 타고 자꾸만 뻗어 올라갔다”는 표현을 통해 상가로 은유되는 문명의 바벨탑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이끌어내고 있다. 반성적 사유의 주체로서 시적 자아는 숨어 있는 함축된 화자이다. 숨은 화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이미지의 명시적 드러냄, 그러니까 묘사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성택의 시는 노래로서의 시의 발생적 성격을 떠나 명료한 묘사와 이미지의 언어에 의해 바벨탑 간은 도시적 문명의 현상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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