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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외음부의 일

2021.06.22 17:48

윤성택 조회 수:110

 

 

 

폭설 속에서 고립된 적이 있다. 길이란 길은 모두 백색 여백이 되었고, 휴대폰도 통화권 이탈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때였다. 눈에 의해서 내가 부정되고 협상되는 조난이 한 시간쯤 이어졌다. 그런데, 그제야 나를 내려놓고 눈발을 보게 되는 시간이 찾아오다니. 눈은 내리는 게 아니라 묻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땅에 묻혀 낱낱이 입자로 분해되듯이, 산 자들의 기억 속으로 황량한 인연이 떠돌 듯이, 눈은 이미 묻힌 무언가가 중력을 얻어 유영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눈빛일 수도 있고 말일 수도 있고, 시대일 수도 있으며 욕망일 수도 있다. 눈이 내리는 것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몸이 이 시공간에 부유하는 한 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 한 점이 내려와 살갗에 닿을 때, 그 안에는 만 년 전 돌화살에 맺힌 피가 있고, 끝내 너를 살린 나의 눈물이 있다. 눈이 내릴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이유는 한때 너를 말없이 가슴에 묻었기 때문이다. 소멸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다시 멸()을 뚫고 소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 오는 아침은 한때 나와의 구체적인 조우이다.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초면의 계절은 매년 타인을 떠돌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눈발에, 그 한 눈송이가 눈을 맞춰온다면 이미 죽었던 네가 나를 살렸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눈이 와 쌓인다

눈 위에 눈을 묻고 또 눈을 묻는다

눈 위에 새를 묻고 또 새의 발자국을 묻는다

눈 위에 나무의 눈빛을 묻고 또 나무의 말을 묻는다

눈 위에 한 시대를 묻고 또 한 시대를 묻는다

눈 위에 인간의 욕망을 묻고 또 인간의 하염없는 눈빛을 묻는다

눈 위에 나를 묻고 또 너를 묻는다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느 얼음벽에 투명한 눈물로 흐를 것인데

눈 오는 아침

나는 죽고 너는 살아난다

이미 죽었던 내가 또 죽고 살아 있던 너는 다시 산다

 

- 김윤배 눈 오는 아침 전문

 

 

마음이 네게로 가기 위해서는 촉이 필요하다. 나의 생각과 나의 의지가 촉의 끝으로 쏠려가는 것을 의향이라고 해야 할까, 의중이라고 해야 할까. 한때 나는 뚫는 것만이 가장 통쾌한 소통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진입일 뿐, 상대의 여린 속마음에 덧난 상처를 알지 못했다. 못을 치는 사람의 심정이 못 박히는 사람의 떨리는 눈빛과 마주할 때, 엇나가 제 손을 찧는 것을 자책이라고 하자. 그러므로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닿는 것은 수없이 빗나간 타격이 꼭 한 번 들어준 필연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박는 일보다 박히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망치가 한 번씩 내리칠 때마다 생활의 틈이 조금씩 밀린다. 그렇게 나를 내어주는 것도 언젠가 뽑혀나갈 자리를 만들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휜 절망을 생각해본다. 더는 들어갈 수 없는 단단한 벽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길 때, 그 못에 나를 걸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녹슬어가면서 못다한 배경의 일부가 되어본다. 그러면 지긋이 조여 오는 누군가를 느끼게 될까. 내가 수없이 가새질러 놓은 꿈 하나가 비죽이 네게 닿았으므로, 나는 이 시공간에 떠 있어도 된다. 의중이 의향을 데리고 당신에게 끼워지는 밤의 일이다.

 

 

철못은 안을 채우면서 박히고

나사못은 틈을 파내면서 들어간다

박히는 소리로 넘치는 못과

파냈으므로 넘칠 것 없이 꽉 조이는 못,

삐걱거리는 못은 딱딱한 성질 때문이 아니라

의중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고

소리 없이 그 틈을 채우는 못은

물렁해서가 아니라

의향을 가늠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땅에 힘껏 찔러 넣어

자국도 없이 박혔다면

그 속에서는 뿌리가 다시 파랗고

우거진 틈을 내 펼치고 있는 것이겠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도

물보라를 덮어 낸 다음에

그 깊이로 가라앉는다

 

벽에 걸린 겨울 외투의 의중이

나른한 창밖을 내다보는 봄날 오후

위층에서 간헐적으로 못 박는 소리가 난다

삐걱거리는 속내도 아랑곳없이

시계 초침은 쉬지 않고 톡톡

휴일 오후를 박고 있다

 

무엇이든 잘 들어가지 않을 때는

그 의중을 물어 살살

돌려 줄 것

 

- 성영희 의중 전문

 

 

가늠해본다는 말은 또 하나의 나를 거기에 보내는 것일까. 무언가 행동에 옮기기 전, 그곳에서 살다온 나를 독대해 어떠했는지 물어보는 느낌일까. 가늠해보는 그 짧은 순간, 나였으므로 가능했던 오감이 일제히 편입해온다. 의식은 형태를 좋아한다. 어떤 형태든 의식이 들어서면 용도가 명확해진다. 가령, 가늠에 의식이 투영되면 가늠간음이 될 수 있다. 이 비슷한 발음 속에는 욕구가 얼마나 몸을 애착하는지 알 수 있다. 이때는 영혼도 잠시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다. 더더욱 감각은 육체를 초월해 미지를 점령해버린다. 마치 외교를 위해 특파된 밀사처럼 조용히 마음의 동요에 주재한다. 그러므로 가늠은 상상보다 더한 구체적인 착용감을 갖고 있다. 자위와 자위의 차이에서 알 수 있듯, 몸은 스스로 욕망을 다스려 지킨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나라는 중심에서 일어난 사태다. 나를 벌려 또 하나의 나를 쾌감으로 불러내듯 입과 귀와 혀가 공동으로 성감을 체결한다. 때로는 지루한 정사보다 살 떨리는 가늠을 손에게 맡기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봄은 나무의 말단마다 성감대다. 예민한 부위에서 꽃들이 핀다. 세상 외음부의 일이니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유부초밥을 상상한다 마음으로 먹는 것은 간음이라고 배웠다 몰래 먹다 체하면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게워냈다 눈물과 함께 나오는 것은

 

간절한 음식

 

(정사를 끝낸 후 배가 고프면 죄일까, 아닐까)

 

소리 나는 대로 초밥을 만든다 수치스러운 모양들,

 

헛배가 부른다거나 목구멍에서 시큼한 게 올라온다면 고난과 참회의 시기, 유부 안으로 들어가려면 뭉개져야 한다 한 세계가 찢어지지 않도록 내 몸의 알갱이들을 가만히 짓눌러야 한다

 

이웃 남자의 발자국 소리를 가늠하는 저녁

 

중심을 벌린다

 

- 박은영 가늠 전문

 

 

* 시마2021년 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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