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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과 관련된 詩들

2001.04.19 19:06

윤성택 조회 수:211 추천:6


오늘은 4.19혁명 제41주년이다. 돌이켜보면 4.19는 정치·사회 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들의 시작활동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거점의 혁명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혁명적 열정이 민감하게 시적 형태로 표출되었으며 민족 진취성의 신성한 힘을 드러내었다. 이렇듯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대한 온 국민의 저항운동은,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서,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는
아사달 아사녀와 중입의 초례청 앞에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구호적이긴 하지만 신동엽은 4.19정신을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껍데기로 대표된 부정적 요인의 거부,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 쇠붙이와 대비된 향그런 흙가슴을 지닌 순연한 정신 등이 이 시를 지탱시켜 준다. 또한 신동엽은 「금강」이라는 시집을 통해 동학혁명과 4.19혁명을 연결하려는 문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억눌리고 빼앗겼던 시대에 김수영은 '눈'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순수에로의 지향을 보여준다. 여기서 '눈'은 순수와 정의·민권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서울도
해솟는 곳
동쪽으로부터
이어진 서남북
손아귀에
돌 벽돌알 부릅쥔 채
떼지어 나온 젊은 대열
아! 신화 같이
나타난 다비데군들

                                ― 신동문「아! 신화 같이 나타난 다비데군들」1연


이 시는 4.19 한 낮 시가지를 휩쓴 시위대의 모습을 감격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신화에 비유함은 신성하고 극적인 역사의 순간으로 감격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듬해 5.16이 일어남으로 4.19는 빛이 바랬고 시인은 그러한 절망스런 현실과 싸우게 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풀」


이렇듯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통찰적 시는 이용악, 백석의 정신을 이어받아 곧이어 신경림, 이성부, 조태일, 김지하, 최하림 등으로 이어져 1970년대 참여시의 분수령을 만들어 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60년 자유당 독재정권 타도의 도화선이 됐던 4.19 혁명은 피의 화요일로 아직도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