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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바닷가의 장례] 시집 읽기

2001.04.25 13:32

윤성택 조회 수:234 추천:3

  


바닷가의 장례/ 김명인


                                                                                

김명인의 시는 화려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그의 내면세계에는 비애의 정서가 깔려 있다. 그 비애는 다시말해 절룩거리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떠나고 돌아오는 시인의 회귀본능적인 시적 성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시인이란 세계의 변화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이며, 그 변화를 선취하고, 그 세계를 앞서서 사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저녁 한 산책자가 건드린 이 산의 철쭉
        산 중턱 높이로 불붙었을 때, 몰려온
        폭풍들이 기슭을 치달아 정상의 소나무들조차
        와와와 소리지르고 아파트 난간이며
        유리창을 한밤내 흔들어대며 던져 보내던
        산의 유일한 무기인 나뭇잎과 무수한 솔방울들,

                                ― <폭풍> 중간 부분 18-19쪽


자연 현상을 시인이 어떻게 꿰뚫고 있는가를 체득하게 하는 시이다. 거대한 자연을 파헤친 문명에 대해 저항하는 자연의 몸부림이 시에 있어서 참신하기까지 하다. 또한,


        녹아서 짓밟히고 버려져서
        낮은 곳으로 모이는 억만 년도 더 된 소금들,
        누구나 바닷물이 소금으로 떠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 <바닷가의 장례> 중간 부분 36쪽


바닷물이 소금으로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장례'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육체를 떠난 영혼)=(바닷물을 떠난 소금)으로의 등식이 성립된다는 걸 시인은 발견한 것이 새롭다. 그것은 다시 축제의 개념으로 정리되는데 예시의 윗부분에는 '우리에게 장례말고 더 큰 축제가/ 일찌기 있었던가'라는 구절처럼 바닷가의 장례를 절묘하게 한국적 정서와 이미지로 이끌어내고 있어 더욱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인은 상상력을 문학의 정수로 이끌어 간다.


        잎새에 붙어 수술칼날처럼 반짝이는 빛살
        의 칼질 뒤에도 좀처럼 도려내지지 않는 그늘을
        나무들은 오랫동안 제 잎맥의 이슬로 닦아낼테지만

                                ― <오래된 사원 2> 중간 부분 40쪽


        수로는 더욱 넓어져 천지간을 이룬듯
        땅으로 부터 끊임없이 물을 운반해가는
        아지랑이의 길이 뭉쳐서 하늘의 운석으로 괴어오른다

                                ― <물의 길> 중간 부분 55쪽


<오래된 사원 2>의 경우 단지 햇살이 '수술칼날처럼 반짝이는'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뒤에 이어 '도려내지 않는 그늘'을 대비시킨다는 점이 뛰어난 시인의 책임감 있는(?) 상상력으로 수긍하게 만든다.
또 <물의 길>에서는 '아지랑이의 길'이 별똥의 빛꼬리나는 것을 '하늘의 운석으로 괴어오른다'라는 탁월한 싯구로 암시한다. 얼마나 기가막힌 상상력인가!
이러한 그의 유려한 언어의 구사는 시의 경지에 어느 정도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