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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젖은 눈] 시집 읽기

2001.04.27 12:02

윤성택 조회 수:383 추천:5

  

젖은 눈/ 장석남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다하면 겨울이 오듯, 이승을 다 살면 저승으로 가고 저승으로 간다는 것은 다시 새로운 시간 속으로 떠나는 것인데 왜 그 떠남을 두려워하는가. 떠남이 순리라면 태어나는 것도 순리여야 한 것을.

                                
        모든
        너나 나나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
        있거늘

                - 국화꽃 그늘을 빌려, 24쪽


에서 시인은 인간 삶의 어떤 순환적 고리를 도출해 낸다. 그것은 시인이 갖고 있는 어떤 사상관과 연관 있을 듯 싶다. 장석남 하면, 몇 년 전인가 영화 '법정'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다가 영화 자체가 취소되는 해프닝이 생각난다. 불교론적인 사상관이 엿보이는 것은 그래서일까.

                                
        여기 호젓하고 고요한 주소지의
        안타까운 묘비명들

                - 민들레, 45쪽


에서 민들레를 바라보는 시인은 그것이 홀씨를 품고 또 다른 생명의 씨앗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묘비명'이라는 시어를 택했을까?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태어남과 죽음의 상관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시인의 이런 기본 바탕의 색깔은 시들이 끝날 때까지 각 시들의 이미지에 덧씌운 하나의 부속이 된다. 그러면서 민들레와 같은 존재에게 시인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영혼은 저 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같이
        가늘게 떨어서 바람아
        어여 이 위에 앉아라.
        앉아라

                - 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같이, 52쪽


그것은 다시 말해 떠남의 자리에 채우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대상이 떠나고 사라지면 떠난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충만으로 이어진 생명의 연속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시인은 유년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아파하며 고통스러웠다가도 무언가 희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막 오동꽃이 필 무렵 누이는 그 장독대에서 떨어져 다리가 깨졌고 방학 내내 별 까닭없이 아이들을 패주고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던 나는 그 집 골방에서 몇 번의 겨울을 나고는 시를 써서 시인이 되기도 했다.

                - 오동나무가 있던 집의 기록·1, 48쪽


이러한 시인의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물론 아이가 시인이 된 것이 희망으로 보기에 어려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징역을 살은 인물이 시인이 된 것은 크나큰 차이가 아닌가) 시인은 불우한 유년을 보상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놓았을지도 모른다.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승의 삶이 저승의 삶과 구별되듯이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는 특별한 동기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주어진 삶을 영위하면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 즉 자신이 희망하던 일을 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이 무늬져 삶이 되고 한 인간의 충족된 인생이 되고 생애의 주름을 형성하는 것이리라. '오./ 저 물 위를 건너가는 물결들/ 처럼.'이라고 적은 자서에서처럼,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보이는 장석남은 이제 그 '의미 있는 일'의 한 가운데에 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