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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 시집 읽기

2001.05.04 12:50

윤성택 조회 수:298 추천:1

  

악어를 조심하라고? / 황동규

        



                          

1. 황동규의 '악어를 조심하라고'를 시집을 읽는다. 그의 시집이 상당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풍장 1'이 실린 시집이니만큼 어떤 특별한 감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장'이란 시체를 한데에 유기하여 비바람에 쐬어서 자연히 소멸시키는 원시적인 장례법이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풍장 1> 전문


연작시를 쓰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에 대한 통찰을 얼마큼 집요하게 시도하느냐에 달려있다. 물론 포괄적 주제를 내세우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튼 상당히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풍장'에서 특별히 두각되는 내용은 '죽음'이라는 뚜렷한 메시지다. 세상에 자신을 맡겨 자연히 소멸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금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대한 생각만큼 진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2. 나에게도 연작시를 쓰게 만든 시간들이 있었다. 군에 입대하자마자 나는 카키색 국군수첩에 끄적이기 시작했던 글들을 어느 날부턴가 '부대일지'라는 타이틀로 연작시를 썼었다. 내 청춘의 26개월을 나라에 저당잡힌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러한 글들을 쓰게 했는지 모른다. 그 연작시는 삼십 몇 번까지 갔던 것 같다. 홀로 고민도 많이 했었고, 살아야할 인생에 대해 그 당시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안개 속의 막막함처럼 무척 조바심했었다.

3. 풍장은 죽음에서 그치지 않고 죽고 나서의, 즉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버린 그때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아는 이는 없다. 다만 추측과 상상일뿐인 말과 사상만 무성할 뿐이다. 황동규의 풍장은 이러한 견지에서 출발한다. 나는 풍장을 읽으면서 느낀다. 작가의 언어로 풍장의 연작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무분별한 세상의 협잡한 기억들을... 아마도 그런 연유로 해서 오랫동안 풍장 연작시가 써졌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풍장만큼 우리에게 주는 황동규의 이미지는 제1 언어로서의 시어가 아닌 또 다른 영혼의 울림이 있는 노래일거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