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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 관한 명상

2001.04.03 17:08

윤성택 조회 수:412 추천:4

빈집에 관한 명상



글 윤성택



1. 시인의 '빈집'이란?


농경사회 때부터 우리는 줄곧 집에 관한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정착한다는 것은 집을 갖는다는 것이고, 거기서 버려진 '빈집'은 다양한 모습의 이미지를 보였을 것이다. 시집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빈집'에 관한 시들을 접할 수 있다. 여기서의 시인들이 말하는 '빈집'이란 은연중 의식 속 모티브의 형상이었을까.
시인이 시인일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런 정황 속에서도 언제나 꿈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시인은 세계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며, 괴로운 현실에 대한 시적 상관물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세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그 변화를 인식하고 그 세계를 앞서서 사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이 혼란할수록 시인은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미지를 읽어내려 애쓴다. 시인이 보여주는 이미지란 현실의 징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1)
결국 그렇다면 시인에게 있어서 '빈집'이란 무엇일까? 왜 시인들은 빈집에 관한 시들을 노래하는 것일까. '빈집'에 나타나는 시인의 마음은 자신의 내면풍경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여러 시인에 의해 불리어진 '빈집', 그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란 자그마한 물음을 가져본다. 여기에 제시된 시인들의 '빈집'에 관한 상상력을 통해, 어떤 양상들이 보여지고 또 그것을 통해 시인이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 '빈집'에 관한 것들

시대가 바뀌면 소재도 따라서 바뀌게 되지만,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소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옛부터 시의 제재가 많이 되어온 하늘·달·해·산·강·바위·꽃·풀·바람 등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김수영의 '풀'의 이미지가 문단에 영향을 주듯, '빈집'또한 어떤 보편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빈집'의 시들이 각 시대별로 나타나 있고 나름대로의 시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빈집'이라는 약호·신호를 통해 그 시대의 상황과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중략)……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에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에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이용악(1938, 시집『낡은 집』), 「낡은 집」부분



일제 강점기에서의 농촌의 궁핍화는 토지 수용―동양척식주식회사―식량수탈―고리채 등의 과정을 밟아 행해진다. 일본의 한국 토지조사는 1910년에 시작하여 1918년에 끝난다. 그것은 일본인의 사적 토지 수탈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그렇게 수탈된 토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거쳐 일본 농민에게 배부된다.3)
이용악의 시는 아무도 살지 않은 마을 흉가를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그 집에 살다가 북쪽으로 그러니까 소련이나 간도로 떠난 일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시의 이해에 앞서 먼저 집이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집이란 주거공간이다. 집이란 가족이 이루어 사는 삶의 기초 공간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이용악의 「낡은 집」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떠나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맞지 못한 채 버림받은 집이다. 이용악의 「낡은 집」은 "꽃피는 철이 와도"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인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빈집'의 전형을 보여준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 버리고 말았다
                                ―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부분


해방과 6·25를 거쳐온 6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는 뇌관처럼 4·19가 존재한다. 4·19가 중요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혁명적인 열정이 가장 민감하게 시적 형태로 표출되었던 시기이다. 비록 5·16에 의해 1년만에 좌절되지만 4·19는 60년대를 대표하는 이념적 불빛이 된다.
이 시절 김수영이 내세운 최대의 주제는 자유였다. 그러나 "자유에는 피냄새가 섞여 있"으며 "혁명은 고독한 것"을 간파한 그는, 반민주·독재의 싸움이라 보았던 4·19에서 일단 혁명의 극적인 성취감을 맛보지만 4·19의 퇴색과 더불어 엄습해오는 자신의 절망과 싸우게 된다. 김수영은 빈방이 되어버린 "그 방"을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그 방"이 비어있음에도 그 곳에서의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을 기억해낸다. 그 빈 공간은 자신의 공간에서 일탈되어 나간 허무와 같은 변주의 소리가 "헛소리"로 들린다. 김수영의 "그 방"은 비어있기는 하나 그 시대에 확산된 내면의 소리가 잠재되어 있는 '빈집'의 고통스런 외침인 것이다.



어쩌랴, 나는 없어라 그리운 물, 설설설 끓이고 실은 한 가마 솥의 뜨거운 물, 우리네 아궁이에 지피어지던 어머니의 불, 그 잘 마른 삭정이들, 불의 살점들 하나 없이 오, 어쩌랴, 또다시 차가운 한 잔의 술로 더불어 오직 혼자일 따름이로다 전재산이로다,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하늘 가득 머리풀어 빗줄기만 울고 울도다
                                ― 정진규(1977, 시집『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부분





70년대는 부당한 유신권력에 의해 조종되는 산업화 시대였다. 이러한 고속 경제 성장의 질주는 물신주의를 극대화 시켰으며, 메마르고 비정한 감각이 지배했던 것 같이 느껴진다. 원래 집이란 비바람이나 추위, 그리고 원시수렵시대에는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인간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피난처였다. 정진규는 그러한 집이 들판에 '빈집'으로 놓여 있다고 토로한다. 그것도 '한 채'라는 개념이 아닌 "혼자일 따름"이라는 구체적 진술로 말이다.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내적 절망의 부재, 어쩌면 '빈집'이란 결핍되고 부재의 공간일 지도 모른다. "한 잔의 술"로 탄식해야 했던 어두운 시대의 시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예이다.


        삭아내린 삽짝문 너머
        그림자 하나 하얗다 사라져버리네 기인
        기인 비명이 꿈처럼 들여오던
        빈집이여 가득히
        달빛 고일 때
        ……(중략)……
        아아 낫가는 사람
        숨죽여 흐느끼며 낫 가는 사람
        대처로 떠났다가 숨어들어와 마지막
        한 벌 흰옷으로 갈아입고 난 사람

        땅에 떨어진
        피에 적신 땅에 떨어진
        낫 끝에 가득히 달빛 고일 때
        아득한 하늘에 천둥 은은하게 흐를 때
        땅에 떨어진
        빈집이여 빈집이여
        땅에 떨어진
                                ― 김지하, 「빈집」부분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80년대 우리 사회적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피의 오월'이라 불릴 만큼 격렬한 민주화의 투쟁은 80년대 사회전환의 동력으로서 자리매김된다. 김지하의 '빈집'은 흉흉하다. 그것은 현실에서 길어 올려진 '빈집'의 이미지이다. 어디선가 "기인 비명"소리가 "달빛 고일 때" 들려오고 급기야 '빈집'은 "피에 젖은 땅에 떨어진"다. 민중의 요구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각종 탄압과 고문, 테러 등을 자행하는 독재 정권 앞에 죽어간 사람들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이렇듯 김지하의 '빈집'은 귀신이 나올 정도로 흉흉하고 피로 얼룩진 폐가이지만, "한 벌 흰옷"으로의 결연한 '빈집'에서의 시적 성취가 엿보인다.



여린 세순 쪼아먹던 닭이 없으니 울밑 구기자 제멋대로 웃자라 휘늘어지고 호박벌 몇 마리 마당의 배추꽃과 장독대의 무꽃 사이에서 오락가락 분주하였다. 추녀 밑 제비집은 거미줄에 둘러싸여 더 이상 보금자리 아니라고 말하고 안방 벽에 걸린 지난해 달력의 억새가 바람에 숨죽인 울음소리 날렸다. 헛간에는 농사꾼의 손을 떠난 지게 쟁기 작두 덕석 등이 깊은 잠에 빠져 만져도 깨어날 줄 모르는데 부엌에서는 젊은 어머니가 홀연 파뿌리 할머니가 되어 불붙은 부지깽이를 손에 쥔 채 어디론가 핑 달려나갔다. 불러도 대답도 없이 귓가에는 호박벌 날개짓 소리만 오래 웅웅거렸다.
                                ― 최두석, 「빈집」



시골에서의 '빈집'의 모습은 그 동기가 사회경제적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나날이 피폐해가는 농업 경제의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이 부재한 결과이다. 이러한 농촌의 공동화 현상은 '빈집'으로 드러나는 최두석의 목소리로 되울려온다. "더 이상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고, "지난 달력의 억새가 바람에 숨죽인 울음소리"를 내는 현실로 드러난다.


신경림의 '빈집'에 있어서는 "답답한 시골 소식 알리겠다고/ 서울 올라간 동네 일꾼들은/ 매 맞았다느니 잡혀 갇혔다느니 뜬소문만 흘리면서/ 우수가 되어 재거름 재고 낼 땐 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올해는 또 빈집이 몇이나 늘 것인가"8)라고 농촌현실에 탄식한다.
한편 이재무는 더욱 서정적인 어조로 농촌의 실상을 보여준다. "허청 한구석엔/ 녹슨 조선 낫/ 옛주인의 손 애타게 부르고 있고/ 수챗구멍 얼굴 묻고 있는/ 숫돌 위/ 썩은새 하나 날아와 앉는다/ 그때, 이웃집에서 온 쥐 한 마리/ 먹이를 물고/ 들킬까, 다 내려앉은 마룻장으로/ 쏜살같이 몸 감춘다"9)
문학이 사회 역사적 상상력의 산물인 것처럼 우울한 음화가 새겨진 80년대는 그 만큼 왕성한 시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80년대말 90년대에 들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몰락과 민주화 바람으로 인해 이전의 시기와는 다른 시적 양상이 보여진다.10) 80년대를 숨가쁘게 살아온 세대에게서는 자기 상실의 위기감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 문화적 질적 향상과 아울러 다양한 시적 결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빈집'에 관한 이해는 이제 시인 자아의 내면 깊숙이 숨어버린다. 그래서 '빈집'의 해석이 명징했던 과거와는 달리 80년대말과 90년대에 들어서서 다소 혼란스럽게 전개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은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가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기형도는 좌절된 사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빈집'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갇혀버린다. 그리하여 그 무엇도 들어갈 수 없는 절대 부재 속에 자신을 가둔 빈집이 되어버린다. 그 사랑은 단지 그의 눈물을 자아내는 사랑이 아니라, 그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고통스러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짧았던 밤들", "겨울 안개들", "촛불들", "흰 종이들", "눈물들", "열망" 등과 이별하고 죽음으로써 완성하는 '빈집'이 되어버린다. 이성복의 경우 좀더 추상적인 개념으로 '빈집'을 만들어 놓는다. "우리 집은 비울수록 무겁고 다가갈수록 멀어라!"12)라고 감탄한다.
이성복의 '빈집'은 언제나 그 집 문밖에서 "서성거리"거나 "머뭇거"릴뿐 들어가지 못한다. 그 상징성이 무엇이든 그 집은 "비울수록 무겁고 다가갈수록"멀어져간다.



가정리 언덕 옆길, 오랫동안 사람들은 가지 않았다. 본래부터 길이 아닌 것처럼. 아이들의 병정놀이도 금지되어 옮겨졌으며 그곳에 대한 어떤 물음도 금기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중략)……
실내 저편,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벽난로의 그을음은 생의 선명한 얼룩이어서, 주인의 겨울을 녹이던 때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 얼어붙은 추억이 다시 타오를 리 없다. 구석의 망가진 인형이 단절된 소리들을 들을 수 없듯이. 엉성한 지붕 위로 해가 뒤집히고 있다.
                                ― 배용제, 「폐가」부분




'빈집'이란 우선 비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그러므로 '빈집'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부정을 암시한다. 그러나 배용제에게서의 '빈집'은 금기의 장소로 확장된다. 존재의 부정과 금기를 통해 인적이 들지 않는 깊숙한 장소로 옮겨지는 것이다.
유진택의 경우에도 "맨드라미가 빈집을 지키고 있다/ ……(중략)…… / 바람이 더욱 세차다/ 맨드라미가 휘청 허리를 꺾는다/ 간혹 우체부가 빈집에 꿈처럼 들렸다가 간다"14)에서처럼 금기의 장소로 옮겨져 "우체부가 꿈처럼 들렸다가"갈 외곽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일까. 시인들은 그리워한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빈집'이지만, 자연에 빗대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쓰고 버린 농약병처럼 쓰러져 있는
        시골 빈집에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제비집이 제비를 기다리는
        텅 빈 집에
        구식 금성 라디오 한 대
        구석에서 혼자 뒹굴고 있다
        ……(중략)……
        누가 있어 스프링 스위치를 눌러 준다면
        잊었던 음성 손자처럼 달려나와
        쿵쿵쿵 울릴 것만 같아서
        코스모스 맨발로 서 있는 마당에서 눈을 옮기니
        헤어진 이 그리워 늙은 호박은
        헝클어지게 머리를 풀어 젖힌 채
        지붕에서 그대로 내려오질 않고 있다.
                                ― 이갑수, 「빈집」




"헤어진 이 그리워"하는 "늙은 호박"의 정경은 사뭇 자연적인 표현이다. 또 한편 송수권의 '빈집'은 "밤새 눈이 쓰러지게 와서/ 누가 저 빈집을 그리워하고 갔는지/ 나는 안다"16)에서처럼 아랫말 잔치집 일을 도우러 간 어머니는 새벽 닭 울도록 돌아오지 않고, 어린 시적 자아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기억으로 더듬어진다.
박라연의 경우는 하나 둘 떠나보내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통해 점점 '빈집'이 되어 가는 자아의 심경을 "한 사람을 보낸다/ 또 한 사람을 보낸다/ 마지막 눈빛까지 모른척한다/ 잡초뿐인 내 生의 안마당/ 무엇을 더 잃어야 내 눈은 투명해질까"17)라고 담담한 어조로 그리움에 관해 토로한다.
그러나 시인들은 자신의 '빈집'을 마냥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빈집'에는 황폐함이라는 이미지가 있듯 욕망의 폐허로도 치환된다. 그 '빈집'들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있는 세계 속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의미해석인 셈이다. 늘 채워지지 못하고 비어 있음에 관한 것들은 이제 시인들은 가만히 내버려둬지지 않는다. 이제 '빈집'은 매몰되거나 도굴되거나 헐려버린다.
함명춘의 '빈집'은 "언제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계단과/ 거미줄 투성이, 그 불꺼진/ 어둠의 빈집과 빈집들로 가득/ 채워진// 보았다/ 보았다라는 내 목소리가/ 가 닿는 순간, 어디론가 매몰되어버리고 만"에서처럼 매몰되어버린다.18)
그 뿐인가, 신현림에 있어서는 "먼 시간의 수목들이 쓰러지고 삽질이 시작되었다/ 땅이 벌리고 한 가계의 고분이 출토되었다/ 기억하라, 기억하라면서 몸부림치는 옛신발이 낙엽처럼 흩어져 날았다"19)에서 '빈집'이 기억되어지기 위해 도굴당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유하 또한 "그 써금써금한 빈집이 헐린단다/ 무궁화꽃 외치던 아이들 다 자라서/ 어디선가 와글와글 큰 집 메우고 있을 이 시간에/ 수면제 먹이듯 면사무소의 돈 몇 푼으로/ 그 빈집 끝내 우수수 헐린단다"20)에서 '빈집'이 헐리는 것을 '한단다'의 형식을 빌려 내용을 전한다.
심지어 이정록에 이르러서는 "화촉도 켜보지 못한 빈방,/ 그런 폐가의 지붕이나 밝히는 박꽃처럼/ 지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것임을, 아는가/ 너만이 나를 꺼버릴 수 있음을"21)이라 하며 빈방을 꺼버릴 수 있는 것은 화자인 '나'가 아닌 '너'라고 지칭한다. 즉, 나로 인해 비어지던 집이 아닌, 너로 인해 비어지는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3. 시의 넋의 공간 '빈집'

시인에게 있어서 '빈집'은 인간 내면 모습의 한 풍경이다. 이러한 '빈집'에 관한 시는 동시다발적 우연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의 반영과 아울러 농촌 경제의 피폐함, 각 개인의 좌절된 욕망 등의 양상에서 보여진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시는 단순히 어떤 관념과 체계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과 느낌의 심연 속에 도사리고 있다. '빈집'에 관한 사회적·존재론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로 해석될 수 있다. 시인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면에 세우는 '빈집', 아마도 그 공간 그 '빈집'은 시인의 넋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빈집'은 한 시대의 어떤 특수한 국면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아무도 남지 않고 떠난 그 자리는 행복과 삶과 희망의 부재에 맞닿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빈집'을 통해 공허하고 황폐한 이 시대 시인들의 모습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 설명

1. 옥타비오 빠스(정현종 역), 「시와 역사」, 정현종 외, 『시의 이해』(민음사,1983), 112-115쪽 참조. 김성곤 외, 「시와 사회」, 『문학에 이르는 길』(열음사,1992), 108-110쪽 참조.
2. 민영·최원식·최두석, 『한국 현대 대표시선 Ⅰ』(창작과비평사,1993), 188쪽
3. 김윤식·김현, 「개인과 민족의 발견」, 『한국문학사』(민음사,1996), 221쪽
4. 김수영, 『거대한 뿌리』(민음사,1974), 77쪽
5. 민영·최원식·최두석, 『한국 현대 대표시선 Ⅱ』(창작과 비평사,1992), 245쪽
6.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창비시선,1982), 120쪽
7. 최두석, 『성에꽃』(문학과지성사,1990), 46쪽
8. 신경림, 「빈집」, 『길』(창비시선,1990), 30쪽
9. 이재무, 「빈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문학과 지성사, 1990), 66쪽
10. 유종호 외 28인, 「한국현대시사」,『한국현대문학50년』(민음사,1995) 참조
11.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1989), 81쪽
12. 이성복, 「집」, 『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1990), 23쪽
13. 배용제, 『삼류극장에서의 한때』(민음사,1997), 18쪽
14. 유진택, 「폐가에서」, 『아직도 낯선 길가에서 서성이다』(문학과지성사,1996), 39쪽
15. 이갑수, 『현대적』(민음사,1994), 70쪽
16. 송수권, 「빈집1」,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문학사상사,1994), 45쪽
17. 박라연, 「폐가」, 『생밤 까주는 사람』(문학과지성사,1993), 28쪽
18. 함명춘, 「빈집」, 『빛을 찾아 나선 나뭇가지』(문학동네,1998), 20쪽
19. 신현림, 「철로가의 집 한 채」,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세계사,1994), 54쪽
20. 유하, 「그 빈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문학과지성사,1991), 133쪽
21. 이정록, 「빈방」,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지성사,1999), 68쪽




― 참고 문헌 ―


1. 시집
김수영,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창비시선33, 1982)
신경림, 『길』 (창비시선83, 1990)
최두석, 『성에꽃』 (문학과지성시인선87, 1990)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시인선, 1990)
이재무,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문학과지성시인선89, 1990)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시인선80, 1989)
유 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문학과지성시인선, 1991)
박라연, 『생밤 까주는 사람』 (문학과지성시인선136, 1993)
송수권 『바람에 지는 아픈 꽃처럼』 (문학사상사, 1994)
이갑수 『현대적』 (민음의시59, 1994)
신현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1994)
유진택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문학과지성시인선187, 1996)
배용제 『삼류극장에서의 한때』 (민음의시86, 1997)
함명춘 『빛을 찾아 나선 나뭇가지』 (문학동네, 1998)
이정록 『버드나무껍질에 세들고 싶다』 (문학과지성시인선221, 1999)

2. 단행본
김 현·김윤식, 『한국문학사』 (민음사, 1996)
최두석, 『리얼리즘의 시정신』 (실천문학사, 1992)
유종호 외 28인, 『한국현대문학50년』 (민음사, 1995)
정현종 외, 『시의 이해』 (민음사, 1983)
김성곤 외 5인, 『문학에 이르는 길』 (열음사, 1992)
민영·최원식·최두석 『한국현대대표시선』Ⅰ·Ⅱ·Ⅲ (창작과비평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