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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어김없이 깨어나 시를 쓸 수 있는가?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시를 쓴다고 한다.  


        세상이 빗방울 위에 놓인다
        
        겨우내 마른 소리를 내며 떠나려던 나무들이
        슬며시 뿌리를 내리고 발등에 누워 젖고 있는
        제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내, 지난 겨울이 저랬던가
        숲이 빗방울을 조용히 내려서고
        오랜 잠 괴로워했던 산갈대
        툭툭 마디를 꺾는다
        내, 지난 봄이 저랬던가
        저처럼 작고 조용한 빗방울에 얹혀
        쓰거운 나이를 버리면
        내 굽은 그림자가 끌고 온
        메마른 마음 햇솜처럼 부풀어
        꽃망울 벙그는 세상을
        혼자는 갈 수 있으리
        내 비록 네 마음속에
        싹 틔울 꽃씨 하나 묻어두지 못한
        불임을 세월을 살더라도
                                        ― <봄 비> 전문


'세상이 빗방울 위에 놓인다'로 시작하는 위의 시는 시인이 세상을 조명하는 뛰어난 통찰력을 접할 수 있게 만든다. 이 한 연의 표현만으로도 감칠 맛 나는 시적 감동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실지로 빗방울이 떨어지려는 찰나 정지된 상태에 놓고 세상을 본다면 틀림없이 세상은 빗방울 위에 있게 된다. 쉬이 찾아 낼 수 없는 좋은 표현이다. 특히 '쓰거운', '벙그는'의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인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다.


         철판 위에서 부푼 말들이 노릿노릿 익어가고 있다
        오늘밤에는 네 몸이 흑설탕처럼 터져 흐르는 모습을
        보리라 남자는 하초가 묵직해지는 걸 느끼며 혼자 웃
        는다

                                        ― <호 떡> 끝부분


  또한 시인의 호떡을 욕망에 비유해 표현하는 부분 또한 범상치 않는 발견임을 느낀다. 가난한 부부의 생활과 거기서 보여지는 애정까지 함축하는 위의 시는 여타의 다른 시들보다 더욱 빛나게 한다.



         죽은 자들의 말소리
        영원히 죽지 않는 따뜻한 말이 되어
        내 몸 속을 기웃거린다
        내 몸 어딘가에 욕망의 포자를 쏟아
        황홀하게 말려갈
        저 죽은 자들의 말소리
                                ―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끝부분 11쪽


  시인의 서시 일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시다. 놀라운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따뜻한 말'에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시인의 욕망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시인이 언급한 「뇌관의 언어」이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포함된 이 욕망은 그러니까 있는 것과 있어야 하는 것 사이에 있는 어떤 공간이며, 시가 욕망의 소산이라고 할 때 그것은 있는 것과 있어야 하는 것을 연결하는 운동이며 접합의 현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 '욕망'으로 인하여 시 자체가 가장 자유로운 것으로 만들며 동시에 가장 속박이 많은 것의 원인으로 만든다. '욕망'이란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 더 깊은 관계를 주는 힘이며, 그것을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적절한 방향감각, 즉 자성을 띠게 하기 위한 시적 각성제인 것이다.
  또한 시인은 잊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말을 찾아 떠돌던 날들이 아프다」로 집약되는 시의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에서 그의 단단한 언어의 조율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