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조> / 전정아 (2006년 『문학·선』으로 등단) / 《우리시》 2006년 5월호
구관조
큰 산 하나가 있다 그는 기다림의 달인이다 몸이 시우쇠처럼 무거울 때 그를 찾는다 어린아이마냥 입을 크게 벌리고 끝말잇기 놀이를 한다 내 고인 말들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그는 마르지 않는 샘,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내 안의 말들, 그를 만나기 위해선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딱따구리의 노래와 만나곤 하는 참나무숲, 뿔 세운 낙엽송 아래를 지나 신발이 흙 두꺼비를 닮을 때쯤, 우렁우렁 마중 나온 그와 만난다
나를 흡혈하던 유물론은 잠시, 안녕
고갯마루에 올라 입을 연다 콘크리트를 입었던 말들이 우르르 달려나온다 해소 기침이 끊이지 않던 생의 가건물들, 나무가 된다 숲이 된다
은빛 메아리로 불 켜진 산
퍼드득, 내 안에 살고 있는 구관조
싱싱한 말들이 날아오른다
[감상]
도시는 그야말로 물질에 의해 존재하는 각박한 유물론적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 산과 숲으로 가고 있노라면 온갖 생명이 충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자연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말>을 통해 재해석하고 또 그것을 배움으로서 성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 시 <그>와의 소통은 중요한 소재인 <말>로 표현되고 구현됩니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을 걸었을 때의 모습을 <신발이 흙 두꺼비를 닮을 때>로 형상화한 부분이나, <내 안에 살고 있는 구관조>로 자연의 존재감을 표현한 부분이 새롭게 읽히는군요. 매끄러운 호흡, 관념을 관념답지 않게 구체화하는 시선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