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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 - 손순미

2011.01.10 09:59

윤성택 조회 수:749 추천:69


《칸나의 저녁》/  손순미 (1997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 《서정시학》시인선 045

          와이셔츠

        그는 후줄근하게 걸려 있다
        그는 너무 오래 쉬고 있다

        비썩 마른 사내의 몸을 최대한 커버해준 것은 그였다
        그러나 사내의 현실을 커버해줄 수는 없었다
        
        사내는 죽음 같은 잠을 베고 잔다
        그는 누워 있는 사내를 입어본다
        사내의 몸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몸에 쌓아두었던 시간이 다 떨어져나간 것이다
        
        사내의 몸이 허둥거린다
        죽음보다 캄캄한 절망을
        배불리 먹고
        사내가 잠꼬대를 한다
        
        잘 가라, 와이셔츠
        
        
[감상]
때론 그 사람의 인상이나 호감, 신뢰가 옷차림에서 비롯되고는 합니다. 그만큼 옷은 당사자의 태도, 가치관을 돋보이게도, 혹은 폄하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와이셔츠가 ‘누워 있는 사내를 입어본다’라는 기막힌 발상까지 확장시킵니다. 각박한 도시문명에서 한 인간의 개성이 ‘와이셔츠’로 대체되고 있다는 우울한 단상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실직을 했을지도 모를 사내가 내뱉는 ‘잘 가라’라는 말, 죽음과 절망의 그 암울한 단말마(斷末摩)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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