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망설임 없이》/ 김충규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 《시인시각시선》002
네 어깨 너머,
네 어깨 너머, 낮달이 서걱거렸다
물결을 끌고 온 새 떼가 네 어깨 너머, 푹 꺼졌다
멀리 숲에 나무들이 제 비늘을 벗겨내고 생선처럼 누웠다고 네가 속삭였다
저 숲에 함께 날아가겠니? 라고 다정하게 덧붙였다
관심이 없었다 네 어깨 너머, 길바닥에 죽어 있는 고양이가 스산했다
어젯밤에 배가 고파 울던 그 고양이였다 분명 무늬가 같았다
살아있던 무엇인가가 소멸할 때 그 몸속에 있던 빛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몸이 식을 때 한순간 피시식 꺼져버리는 걸까
허공의 사방으로 뻗어나가 다른 빛들과 버무려지는 걸까
죽어볼까? 뜬금없는 내 말에 네 어깨가 막 피어오르던 일몰을 가렸다
남편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여자를 알아, 네가 말했다
너니? 라고 묻지 않았다
네 어깨 너머, 달이 화장을 하고 바람이 숲의 비린내를 몰고 오고
너는 더는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고 휴대폰엔
죽은 스승을 만나러 숲으로 갈까? 라는 친구의 문자가 식어 있고
오늘밤엔 어떤 고양이를 만날까
[감상]
‘네 어깨’라는 말, 이 시에 와서 안온하고 부드럽게 읽힙니다. 홀로된 존재가 불길하고 황량할지라도 이렇게 두 사람이 시적 소통 안에 있으면 스르르 서정에 동화됩니다. 죽은 고양이를 통해 영혼의 본질을 ‘빛들’로 이해하려는 것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열망입니다. 죽음까지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섬세한 관점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순수하게 물들인다고 할까요. 강화도 전등사 산비탈의 한그루 소나무에 깃든 스승…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어슴푸레한 연민이 일몰처럼 번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