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의 구조》/ 김지녀 (200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 《민음의 시》158
스위치
이것은 일종의 정신이다
허리에 양손을 대고 좌우로 몸을 흔드는 이등병처럼
간단하고 절도 있게 눈을 깜빡이는 일이다
비행기가 빌딩을 들이박아도
땅이 갈라져 수없이 사람이 흙에 묻혀도
동요하지 않고
둘러앉아 아침과 저녁을 찬찬히 씹어 먹는 침착함의 미덕과 유사하다
탁!
껐다 켜는, 암전은 기술입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기적이지만
기적을 바라는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거실에 불을 켜놓고 잠드는 일도 마찬가지
암전의 기술은 예고 없이
우리를 겨울에 도착하게 합니다
탁!
무릎을 치는 순간,
필라멘트가 끊어진 줄도 모르고
나는 당신을 떠올린다
매달린 전구알처럼 태도를 바꾸진 않겠지만
당신은 어둠 속에서
어둠으로서 완전하게 열리는 중이다
탁!
내 안의 모든 스위치를 켠다
극과 극이 만나고 있다
[감상]
스위치를 켜고 끄는 반복적인 패턴이 일상적인 면면에 드러납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의 절도 있는 군가 부르기, 죽었다가 살아나는 반전, 기억이라는 필라멘트… 이 모든 것들이 극과 극 접점에서 일어납니다. 이렇게 이 시의 동력은 이분법적 영역을 오가는 시적 형상화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는 이 극단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처리함으로서 상호 관계성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겠습니다. 삶을 각인시켜 주는 이 극과 극의 ‘스위치’가 있기에 우리는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발견할 수 있고, 또 그곳에서 나와 다른 무언가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