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카메라>/ 김지향 (1954년 『태극신보』에 작품발표로 활동시작) / 《다층》2009년 겨울호
자동카메라
카메라는 혼자서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눈을 접었다 떴다 마음대로다
문득 카메라 눈이 불꽃이 되었다
사람의 눈길만 닿으면 더욱 맹렬해진다
넓게넓게 불꽃이 퍼져나간다
불바다가 되고 불하늘이 되고
불우주가 되고
카메라 속에 나무가 불타고 산이 불타고
들판이 불타고 바다가 불타고 길이 불타고
카메라 속에 빌딩이 불타고 사람이 불타고
카메라 속에 들앉은 세상이 익어간다
세상 속에 들앉은 사람이 익어간다
사람이 익어서 나가고 산이 나가고
들판이 나가고 나무가 나가고 우주가 나간다
익은 사물 모두는 카메라 속에서 나간다
모두 삭제된 허공이 카메라 속에서 나간다
문득 카메라 눈을 꾸욱 접은 채
다시는 삭제되지 않을 새 우주를
실 티 같은 촉수로 새로 그려내는 중이다
[감상]
매번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가지만, 카메라가 여행 중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시는 이런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객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주체가 되는 관점을 매력적으로 펼쳐냅니다. 자동카메라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플래시 불빛이 ‘불꽃’이 되는 순간, 이 시의 배경은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로 포착됩니다. 분주히 셔터를 누르는 광경이 경쾌하게 지나가듯, 운율감 있게 반복되는 묘사가 센서처럼 반짝거립니다. 언제든 흔적없이 삭제될 수 있기에 카메라 속은 ‘불타는’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카메라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서, 낯선 곳에 도착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