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성》/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 /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65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누군가의 꿈속에서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있는
얼음의 공포
물고기 알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며
누군가의 웃음을
대신 웃으며
나는 낯선 공기이거나
때로는 실물에 대한 기억
나는 피를 흘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
[감상]
자의식 속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흥미로운 시입니다. ‘나’라는 화자가 내면세계에서 언어화 되면서 간결하고 경쾌한 암시적 여백을 형성합니다. ‘나’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행간 속에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 마치 사후를 넘나들며 떠도는 영혼 같은, 아니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정령 같은 교감이 아련하게 일렁인다고 할까요. ‘인간이 되어가는 슬픔’인 나. 문득 바람처럼 생의 기미가 일고, 한때 나였던 인과적 고리가 쓸쓸하게 환기되는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