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 조숙향 (2003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로 등단) / 《겨울숲 7인 시집》 시평사
밤 낚시터
낚싯대를 드리우고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던 노인이 어
둠에 취해 있습니다. 어둠을 실컷 마시기에는 그의 주량
으로는 아직 무리인가봅니다. 낚싯대 끝이 가늘게 흔들
립니다. 강의 내장을 끌어올렸던 노인의 손이 노래를 한
발 장전합니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적막을 쏟아붓습니
다. 촘촘한 갈대숲 사이를 지나친 한 줄기 바람이 강기
슭을 돌아갑니다. 그는 살아온 연륜 같은 어둠을 건져올
려 이따금 안주로 씹습니다. 낚싯줄이 레코드 핀처럼 박
히고, 거나하게 취한 강물이 레코드판을 돌립니다. 흘러
간 옛 노래들은 아픕니다. 어둠이 한잔 술을 따릅니다.
[감상]
새벽녘 안개와 섞여 짙게 깔려 내려앉은 풍경이 선합니다. 낚시를 떠올리면 항상 물내음이 생각납니다. 그 비릿한 느낌은 왠지 설레이기도 하고 또 왠지 쓸쓸하기도 합니다. 이 시는 낚시를 하는 노인과 그 배경을 카메라처럼 잔잔하게 훑어갑니다. 취하는 것이 어디 술 뿐이겠습니까, 마음도 취하고 강도 취하고 다만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만 깨어 있겠지요. 낚싯줄로 반응하는 물의 파문을 레코드판으로 비유한 <낚싯줄이 레코드 핀처럼 박히고, 거나하게 취한 강물이 레코드판을 돌립니다>의 구절이 매혹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