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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5:02

윤성택 조회 수:1649 추천:325

장석주/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病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畵集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는
       절망은,



[감상]
첫행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가 시선을 내내 붙잡고 있네요. 이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두운 내면의 풍경을 더듬습니다. 결국 화자가 말하는 희망은 가장 절망적일 때 희망이 다가온다는 메타포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저는 더욱 절망해야겠습니다. 절망의 바닥을 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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