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에겐 피아노가 있고 피아노에겐 내 귀가 있어
밤이 깊을수록 건반의 눈꺼풀로 떨릴 수 있다
비워낸 만큼 가지에 먹구름 들이면
내일밤 혹은 오늘쯤 나무에 흰 눈이 열릴까
그걸 바라보는 눈은 또 얼마나 부시고 실까
주르르 흘러내리는 한낮이
시다 시다 오 시다, 풋 눈 한 덩이로
십이월의 행간에 맺혀 있다
누구는 그걸 눈꽃이라 하고
누구는 그걸 서리라 했지만,
나무가 흰 이어폰 줄 같은 가지 끝에
잭을 꽂아 공중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책을 덮지 못한 채
피아노 덮개처럼 어떤 종료를 기다리는가 싶다가도
첼로 앞 한 손을 번쩍 든 활처럼 숨을 멈춘다
나무가 듣고 있는 바람을 들이고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을 유리창에 끼워 넣는
공백
그 틈에도 눈은 계속 내려, 8번과 15번에서
몇 해째 같은 트랙을 돌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무는 나를 나무라지 않고
나는 나무를 그저 나무라 하지 않아서
계절을 지나듯 사람을 지나듯
이루마이거나 유키구라모토이거나 케빈 컨인
음악 속으로 얼마나 많은 詩가 떠났는지
잊었다가도 왜 가끔씩 뒤돌아보는지
겨운 나무는 밤마다 별의 트랙을 돌린다
그 한가운데 단자(端子) 같은 달이 있어
시고 시인 눈소식을 꽂아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