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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저 |가쎄 |2013.11.17

페이지 328|

 

 
문장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을 때 스스로의 생을 받아들인다. 편지가 나의 손을 떠났다는 건 한 사람이 내 몸에서 일어나 밤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는 이제 과거와 미래에 걸쳐 감정이라는 소읍을 지나야 한다. 우표는 언제나 타인을 향해 붙이지만 편지는 그 타인에게서 자신을 천천히 떼어낸다. 어둡고 먼 길을 걸어온 그가 쓸쓸히 자신의 어깨를 내게 기대올 때 첫 문장이 시작된다. 눈빛이 종이에 머물 듯, 한 사람이 내 안으로 이주해오는 것이다. 대화가 사람과 대면하는 것이라면, 편지는 종이라는 성(城)에 망명한 말(言)을 인도받는 것이 아닐까. 우체국에 가면 사나흘 기다리다 서성거리는 이름들이 있다. 내가 하나의 사연으로 불릴 때 당신은 난민이 되어버린 한때의 나를 수용(收容)하는 것이다. 읽히고 있는 지금도 나는 문장으로 흩어지며 당신 눈에서 흘러내린다.
 
필체는 마음이 평생 문자를 떠돌며 제 안에 새긴 지도이다. 그래서 글씨에 은신시킨 본심은 획 하나에도 떨린다. 편지를 읽는다는 건 그가 남긴 세계에 유목하며 돌무덤 위 색색의 천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람이 단 한 번 몰고 오는 눈동자에 글씨가 나부끼며 마음의 입구를 알리고 있다는 걸, 내 안에 소원이 생기며 알았다. 편지는 잉크 닿는 촉감이 당신의 시력으로 만져질 때 아름답다. 한때 편지가 청춘에게 배달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길을 택한 것도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엔 발견되지 않은 거처가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 내려앉은 필체가 종이에 스미고 또 한 사람의 마음에 스미기까지, 우리의 피는 뜨겁게 몸 안에서 일생을 적는다. 오늘밤 당신의 지도에 섬 하나 멍처럼 푸르게 웅혼하였으면.
 

우체통에서 편지는 나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글로 존재하지 않는 날들까지 꿈꾼다. 모든 책상이 엎드린 채 시선을 주유하여 활자를 움직이듯, 우표가 묵묵히 주소를 위해 접착하고 있는 운명을 믿는다. 편지를 태워도 끝내 연소되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이 바쳤던 내면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내 앞의 백지는 다만 여백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다. 매 순간 심장이 박동하며 글자에 공급하는 공기. 결국 편지를 개봉했을 때는 보낸 이의 숲에서 행간을 걷는 것이어서, 나는 이제 당신에게 서식하는 예감이다. 답장을 기다리면서 위독한 글자를 살려내고 있을, 매일 사라져가는 문장이 여기에 있다.

 

- 본문 中

 

 

출판사 서평


“아무 말 마시라.

나는 지금 이 밤의 온도를 얼음 속에서 적고 있을 뿐이다.”


- 시인 윤성택의 기억과 추억에 관한 사진 에세이 


“나는 아직도 밤이 일생을 다운로드 하는 버퍼링(buffering)이라 생각한다. 밤새 침대에서 전송과 충전을 마친 사람은 생생하게 낮을 저장한다. 그러나 한 번도 폴더에 들지 않는 인연이 어느 날 나를 다운시키기도 한다. 뻑 나듯 현실이 둔기가 되는 날, 전원을 켜둔다. 그때는 인생이 한여름밤이다.” 


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따로 없는 이유는 시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본능적으로 매 순간 은유한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시어를 빌어 다시 태어날 때 그곳은 이미 여기와는 다른 세상이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야 하는 그 세계가 우리 곁에 있지만 가깝고도 참 낯설다. 

“살아간다는 건 이해와 오해를 뒤집어쓴 짐승에게 내 이름을 던져주는 것이다.”


2001년 ‘수배전단’으로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이제 시인은 사진이 있는 에세이 《그 사람 건너기》를 통해 시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고충을 산문으로 털어놓는다.


“몇 시간 째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단 한 줄의 글을 남기지 못하고, 이런저런 궁색한 상상만 하다가 컴퓨터를 꺼버릴 때가 있다. 목울대에서는 무슨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데 왼쪽 가슴께가 결려서 기지개만 두어 번하다가 멈추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날은 오후가 겹겹이 포개져 시간 속을 겉돈다. 마음은 버스 뒷좌석처럼 적막해진다.” 


데뷔 5년 만에 첫 시집 《리트머스》를 펴내 호평을 받았던 시인은 다시 7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두 번째 시집 《감에 관한 사담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시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극에 절박함을 데려와 문장으로 일생을 살게 한다. 그러나 종종 활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폐허가 되는 내면도 있다. 나는 늘 그 부실이 두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어떤가. 진실함과 절박함이 오래 마주하다 진실이 떠나고 나면, 절박은 저 혼자 사람과 사람 사이 귀신이 된다. 스스로 정체성을 잃은 채, 이기와도 욕망과도 내통하며 사람을 홀린다. 진실이 있지 않은 절박은 더 이상 사람이 될 수 없다.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이 절박은 무엇인가.”


흑백 톤의 절제된 사진 혹은 오롯한 컬러의 사진들이 간간이 시인의 절박한 마음을 글 대신 영상으로 전해준다. 시인이 털어놓은 일상의 사소한 사연들 속에는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지만 역시나 구체적이지는 않다. 은유의 세상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윤성택 시인의 사진 에세이는 산문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래서, 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