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후회의 방식

2005.03.18 10:31

윤성택 조회 수:1674 추천:127


        후회의 방식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하다  
        달리는 기차에 뛰어든
        시간은 더이상 가지 않는다
        으깨어진 핏덩이와 뼈가 허공에 박혀 정지된,
        플랫폼을 유령처럼 돌아본다
        돌아가고 싶다, 목구멍에서
        터널 같은 빛이 터져나온다
        뢴트겐 차창을 달고 기차는
        역에서 거꾸로 멀어져간다
        기적 소리를 비벼끈 꽁초가
        손가락 사이 불빛으로 켜질 때
        살아 눈뜬 것이 죽음보다 외롭다
        한밤중 삼킨 수면제가 한 움큼
        손바닥에 뱉어지고 물과 파편이 솟구쳐
        책상 위 유리컵으로 뭉쳐진다
        어깨를 입은 외투는 캄캄한 밤길을 지나
        저녁 어스름까지 데려다준다
        수면제를 건네받은 약사가 수상한
        처방을 뒷걸음으로 떼어온다 영안실
        흰 천에 덮인 당신이 거실로 옮겨지고
        비닐에서 피 묻은 칼을 꺼낸 감식반은
        출입금지 테이프를 마저 철거한다
        삐끗한 발목으로 창을 넘는
        손이 떨린다 당신의 가슴에서 칼을 뽑자
        턱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올라 눈에 스민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창백한 얼굴,
        당신에게 어떻게 용서될 수 있나
        기차의 굉음이 레일에서 급히 멈춰 섰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마지막으로 공중에서
        허공을 찢는 호각 소리를 듣는다


* 시집 《리트머스》(문학동네) 中

 

윤성택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리트머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 『그사람 건너기』.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여행 2010.12.31 2163 135
공지 타인 2008.02.12 2460 112
공지 아틀란티스 2007.04.12 2054 56
공지 FM 99.9 2004.09.26 2538 85
공지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2004.12.15 2760 125
공지 탈수 오 분간 2004.06.01 2559 100
공지 로그인 2005.09.01 2426 84
공지 스트로 2003.09.18 2467 88
» 후회의 방식 2005.03.18 1674 127
공지 장안상가 2004.06.03 2529 87
공지 대학병원 지하주차장 2004.02.28 1685 31
공지 검은 비닐 가방 2006.02.15 1877 55
공지 농협창고 2006.07.27 1844 55
210 그래서 기대한다 外1 - [시와경계] 2024년 가을호 secret 2024.09.26 0 0
209 가다 서다 드는 것들 - [시마] 2024년 가을호 산문 연재 secret 2024.09.26 0 0
208 여름 이전 - [시마] 2024년 여름호 산문 연재 secret 2024.06.28 0 0
207 입김 - [시마] 2024년 봄호 산문 연재 secret 2024.03.28 0 0
206 보호되는 휴일 - [시산맥] 2024년 봄호 secret 2024.01.05 0 0
205 가을 우체국 - [시마] 2023년 가을호 산문 연재 secret 2023.08.04 0 0
204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릴 때까지 온다 - [시인시대] 2023년 가을호 secret 2023.07.11 0 0
203 냉장고 - [시마] 2023년 여름호 산문 연재 secret 2023.05.12 0 0
202 봄봄봄 - [시마] 2023년 봄호 산문 연재 secret 2023.02.07 0 0
201 목련 플래시 - [시와편견] 2023년 봄호 secret 2023.01.16 0 0
200 산방에서 일주일 - [시마] 2022년 겨울호 산문 연재 secret 2022.11.11 0 0
199 나귀에 실려 - [미네르바] 2022년 겨울호 secret 2022.10.19 0 0
198 페닐에틸아민 계 - [시마] 2022년 가을호 산문 연재 secret 2022.09.12 0 0
197 바다 - [시마] 2022년 여름호 산문 연재 secret 2022.05.31 0 0
196 너라는 헥토파스칼 外1 - [디카시] 2022년 여름호 secret 2022.05.31 0 0
195 목련 자필 -[문파] 2022년 봄호 secret 2022.01.16 0 0
194 독거 - 한국시인협회 [그의 얼굴]편 secret 2021.12.25 0 0
193 슬픔 감별사 - 웹진[같이 가는 기분] 2021년 겨울호 secret 2021.11.15 0 0
192 몇 알의 별을 모아 外 1편 - [시현실] 2021년 여름호 secret 2021.05.03 0 0
191 sea창작교실 - [미네르바] 2021년 봄호 secret 2021.01.20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