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야경은 십자 모양의 홈을 내고 추위를 조인다
한쪽으로만 들이치던 눈발은 그칠 줄 모르고
카메라 액정 같은 창문에는 불면이 저장된다
귓불처럼 붉은 연애를 생각했다면
그 밤길은 단단한 다짐들로 번들거려야 한다
기어이 가지 하나 더 내기 위해 언 땅속
플러그를 꽂는 나무는 초록빛 그을음이 가득한데
나는 고작 타다만 연민을 들쑤셔 어두워질 뿐이다
시베리아의 숲이 일제히 바람에 쓸려와
자작나무처럼 하얗고 빽빽한 새벽,
조여질 대로 조여진 한기는
유리창에서 헛돌며 성에를 새긴다
아름다운 건 차라리 고통스럽다
이 견딜 수 없는 순간은 이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단풍나무를 물들이는 고요의 시간이다
유화처럼 덧바른 기억이 말라
부스러지고 그 색들이 먼지가 되어버린 지금,
사랑은 타인이라는 대륙을 건너는 혹독한 여정이다
만년설 속에서 발견되지 못한 당신의 유적이다
발목이 빠지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이 고립은
누구도 들어서지 않은 외로움의 지대
가까이 왔다가 그대로 사라져가는 헬기를
멍하니 돌아보는 조난자처럼 나는 적막을 껴입고
이 폭설을 뜬눈으로 지나야 한다
*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문학동네) 中
윤성택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리트머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 『그사람 건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