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감상]
기형도는 80년대와 90년대를 이르는 이정표로 존재합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시집만큼이나 깊은 상징을 낳았고, 대다수 젊은 시인들이 기형도에게 많은 이미지를 빚지고 있습니다. 이 시는 직관과 이미지가 하나의 의미를 보여주는 틀에 서 있습니다. 누가 '나는 늙은 것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태어면서부터 누구나 외롭다져?
항상 절대적 고독에 빠져 살다 갔던 기형도 시인이 그리워 집니다.
지금부터 詩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