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다층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中
낙타
나의 집으로 낙타가 들어왔다 쉴 곳을 찾았다는 듯이 길게 숨을 토했다 맑은 눈에선 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없지만 살점 없이 앙상한 다리는 한없이 지쳐 보였다 낙타와 함께 지내기엔 집이 너무 좁아 나는 낙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낙타가 등을 낮췄다 나더러 올라타라는 것인지 푸르르 몸을 털었다 나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지 않았다 나는 사막을 지키는 전사가 아니므로 더구나 순례든 고행이든 사막으로 떠날 계획이 없었으므로 낙타를 집 밖으로 몰아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지 않자 낙타는 그만 풀썩 주저앉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낙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무덤 하나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감상]
쉴 곳을 찾아 먼길을 걸어온 낙타, 그 낙타를 달가와 하지 않는 화자. 이 묘한 대별구도가 이 시의 흡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낙타는 이승의 삶을 무덤으로 완성한다는 듯, 이승저편에서 무덤 하나 이고 왔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