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시집
오존 주의보2
문정영
1.
내가 자주 가던 병원의 흰 건물에도
오존주의보의 깃발이 걸렸다
체온계를 입 속에 끼워주는
간호사의 얼굴이 푸석 이는 나뭇잎으로 흔들린다
의사의 진단이 어려운 문자로 쓰여질수록
병명은 짙은 스모그에 묻히고,
나는 좁은 병실의 한 귀퉁이에 도막난 나무둥치처럼 눕는다
금간 유리창 너머로,
제 몸을 칭칭 감은 깃발이 비틀거리고
환자를 실은 자동차의 행렬이 섰다가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고층빌딩에 좁아진 도로가
가끔씩 협심증을 일으키며 병원입구로 들어온다
늘어나는 자동차에 가위눌리듯
식은땀을 흘리며
2.
멀쩡한 사람들이 사가는, 병원 입구의 꽃집이
오늘은 문을 닫았다
물 뿌리면 싱싱해야 할 화초들
흐린 햇살이 다가갈수록 입을 굳게 다문다
누군가 묶어 둔 안개꽃과 장미가
시든 채 벽에 걸려 있는 꽃집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미래가 그 곳에 참담하게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감상]
사람에게 있어 병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시는 환자와 일상인과의 미묘한 심리적 간극을 잔잔한 서정과 함께 풀어놓습니다. 특히 '멀쩡한 사람들이 사가는, 병원 입구의 꽃집'은 생경한 이 생의 삶을 깨닫게 하고요. 제목에서 오는 아련한 분위기가 좋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