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깨꽃을 불고 싶다>
그물을 깁는 노인
노인은 그물을 선창에 널었다
바람도 비린내가 났다
머리칼이 푸석한 그물 같았다
수캐는 낡은 창호지처럼 힘이 없다
거제도 하청면 장곶마을로
동백꽃 같은 여인이 시집을 왔다
여인은 지아비를 따라 거울같이
차가운 바다에 갔다
술에 미친 사내는 물을 푸다
바다에 빠진 아내를 두고 돌아왔다
복사꽃같이 화사한 여인들이 연일
야밤에 그 집을 나가버렸다
어린 아들은 앉은뱅이꽃처럼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늙은 수캐는 이젠 눈조차 바다를 향하지 않는다
노인은 찢어진 추억을 기웠다
바닷가 작은 마을 그의 선창가에는 기워야 할
수많은 상처들이 술병처럼 널려 있다
[감상]
'찢어진 추억', 관념을 보조하는 이런 추상적 언어도 '어망'으로 점철되는군요. 서사가 바닷가 노인의 내력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입니다. 간간이 쓰이는 직유는 충분한 제 역할을 통해 의미를 풍성하게 하고요. 이 노인의 싱싱한 근육의 시절이 갑자기 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