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 공단문학상 최우수상
세월의 변명
남편은 석간 신문을 펼쳐놓고 발톱을 깎는다
아직 구조조정은 끝나지 않았다
엄지발톱 같이 큰 활자 위로 힘없이 떨어지는 지난 세월
발톱을 깎는 마른 손이 경련을 일으킨다
2년 전 직장동료에게 등을 돌린 그날이 시린 것일까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눈빛이 흐려진다
살아남기 위해선 날카로운 발톱을 보일 수밖에 없었어
중얼거리는 남편의 목소리,
톡톡 신문지 위로 나뒹군다
흩어진 생을 둘둘 신문에 마는 남편
뾰족한 발톱날 하나가 구겨진 신문지를 툭 뚫는다
상처는 감출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감상]
남편이 깎는 발톱과 구조조정을 절묘하게 잇대어 놓은 시입니다. 이처럼 메인이 되는 주제에서 연상되는 또 하나가 있어야 비로소 '참신함'이라는 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시가 빛나는 이유는 '발톱날 하나가 구겨진 신문지를 툭 뚫'는 모습을 목도하는 삶의 진정성에 있습니다. 투쟁은 언제나 삶을 담보로 하는 어려운 싸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