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 김충규/ 다층
저수지
바닥 전체가 상처가 아니었다면 저수지는
저렇게 물을 흐리게 하여 스스로를 감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수지 앞에 서면 내 속의
저수지의 밑바닥이 욱신거린다
저수지를 향해 절대로 돌멩이를 던지지 않는다
돌멩이가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내 속의 저수지가 파르르 전율하는 것이다
잔잔한 물결은 잠들어 있는 공포인 것이다
상처가 가벼운 것들만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들을 잡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저수지의 상처가 키운 것,
저수지를 떠날 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상처 가진 것에 대해 연민 혹은 동정을 가지면
몸을 던지고 싶은 법,
그런다고 내 속의 저수지가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감상]
그의 시는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 낼 수 있는 훌륭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저수지"는 시인의 독특한 시선도 시선이거니와, 부정의 어투로 더욱 긍정을 만들어내는 은유에 감복하게 됩니다. "상처가 가벼운 것들만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들을 잡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저수지의 상처가 키운 것,"에 이르러서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처럼 시란 어둑한 마음에 환하게 불을 켜는 스위치 같은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어둑한 내면의 복도를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으려 그처럼 애쓰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