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시편/ 이문재/ 민음사
푸른 곰팡이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감상]
편지가 아름다웠던 시절, 멀리 있었던 사람들에게 편지는 매우 유용하고도 편리한 도구였습니다. 특히 은근하면서도 뜨거운 연민의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에게는 편지만한 매개는 달리 없었고요. 그러나 핸드폰과 이메일의 시대에 편지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편지는 이제 우월한 통신수단의 자리에서 물러나 주변인적인 기능으로 된 것이 아쉽기만 하네요. “나에게서 그대에게로”가 닿는 데에 걸리는 시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에 사나흘씩이나 필요하답니다. 결국 편지가 가는 동안, 마음의 “발효의 시간”이 있는 셈입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 구절들이 너무 웃깁니다...한참 웃었습니다..시는 이래서 갈 수록 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