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국 / "詩川" 동인 (http://riverpoem.com)
4월
애인과 섹스하고 돌아보니 4월이었다
여자는 할퀴거나 깨물기를 즐겨서
멍든 자리마다 대나무가 꽃을 피웠다
오랜 집중이 요구되었던 체위들 사이로
폭설이 내리는 풍경이 삽입되었다가는
산산조각으로 깨져 나가곤 했다.
목련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데
애인은 몇 시 기차를 타고 떠나갔을까
열차표를 손에 쥐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 보니 서른이었다
애인과 섹스만 했는데도 4월이 오고
방구석은 어느 새 절벽이 되었고
책상과 침대가 까마득한 곳에 떠 있었다
누가 겨울 내내 우물을 파놓은 걸까
왜 어디서도 물소리는 들려오지 않는걸까
애인과 섹스한 것은 분명히 죄는 아닌데
그러면 내가 녹아 물이 되어 흘러야지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달려들어와
나이는 똥구멍으로 쳐먹냐고 욕했다
그래 누가 내 똥구멍에 흙이라도 채워줘
꼬불꼬불 꽃 한 송이라도 피워 올리게
애인과 섹스를 하지 않아도 4월이 왔을까
피도 눈물도 없이 아름다운 혁명도 없이
사월이었다 돌아보니 말도 안 되는 서른이었다
[감상]
눈이 번쩍 뜨이는 시이지요. "섹스"라는 화두를 시에 과감하게 도입한 이 시는, 도발적이고도 패기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안 시의 정서는 아주 차분하고 성찰적인 내용입니다. 고상한 것, 아름다운 것만으로 시를 쓰기에는 세상이 너무 각박합니다. 나이 서른에 다다라 느끼는 그러한 화자의 심경, 저도 공감하게 되는군요. 아무튼 시적 직관력이 뛰어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