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민음사
사랑니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세상 너무 환하고 기다림 속절없어
이제 더는 못 참겠네.
온몸 붉디붉게 애만 타다가
그리운 옷가지들 모두 다 벗고
하얗게 뼈가 되어 그대에게로 가네.
생애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그대 빈 곳 비집고 서면
미나리밭 논둑길 가득
펄럭이던 봄볕 어지러워라.
철마다 잇몸 속에서 가슴 치던 그 슬픔들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
빛나는 뼈로 솟아 한밤내 그대 안에서
꿈같은 몸살 앓다가
끝내는 뿌리째 사정없이 뽑히리라는 것
내 알지만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
[감상]
사랑니 앓았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느낌을 이끌어내는 솜씨도 탁월하고요.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의 첫 행부터 그럴지도 모르겠는 걸? 이라는 공감을 끌어갑니다. 그리고 끝 부분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의 알레고리 또한 사랑의 절절함이고요. 사랑니 때문에 입도 다물지 못했던 시절, 울컥울컥 사랑도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