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 나희덕 / 민음사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감상]
너에게로 향한 무구한 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시입니다. 첫 연부터 힘껏 시선을 끌어 모읍니다. 결국 세상의 모든 길은 너에게로 향한 길이었다는 것. 사랑이든 운명이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 영원성.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영속성에 대한 매력입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푸른 밤, 그 마음을 되짚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