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조영민 / 『빈터』동인
섬
그 때 안개가 자주 밤을 덮치고
가로등을 등대 삼아 집들이 정박한 부동항
섬은 얼마나 커다란 닻을 가졌기에
더이상 항해하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좌표를 기록할 뿐
누구도 뱃길을 기억하지 않았다
물거품이 섬을 향해 몸을 던지면
나는 녹슨 갑판에 웅크리고 앉아서
몹쓸 말들을 종이에 말아
마리화나처럼 피워대고 나서야
섬이 가진 닻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뱃머리에다 이불을 펴면
파도가 동침한 흔적
한 줌 소금이 되어 섬에 남는다
[감상]
시인의 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바다 위의 섬조차 "섬은 얼마나 커다란 닻을 가졌기에/ 더이상 항해하지 않는 걸까"라고 가지는 물음. 이 부분에서 '아!'하고 울림이 옵니다.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틀을 벗어난 이 물음이야말로 詩의 기본 품새가 아닐까요. 전체적으로 밀도 있는 수사며, 흐름도 좋습니다. 또 이 시의 좋은 점은 자극적이라는 것이겠지요. "마리화나"부분이나 "파도가 동침한 흔적"부분이 그러한데, 그것이 작위적이지 않는 이유는 비유에서 오는 설득력 있는 설정이 참신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