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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조영민

2001.08.07 13:28

윤성택 조회 수:2089 추천:256

「섬」 / 조영민 / 『빈터』동인




              
        
  



        그 때 안개가 자주 밤을 덮치고
        가로등을 등대 삼아 집들이 정박한 부동항
        섬은 얼마나 커다란 닻을 가졌기에
        더이상 항해하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좌표를 기록할 뿐
        누구도 뱃길을 기억하지 않았다
        물거품이 섬을 향해 몸을 던지면
        나는 녹슨 갑판에 웅크리고 앉아서
        몹쓸 말들을 종이에 말아
        마리화나처럼 피워대고 나서야
        섬이 가진 닻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뱃머리에다 이불을 펴면
        파도가 동침한 흔적
        한 줌 소금이 되어 섬에 남는다




[감상]
시인의 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바다 위의 섬조차 "섬은 얼마나 커다란 닻을 가졌기에/ 더이상 항해하지 않는 걸까"라고 가지는 물음. 이 부분에서 '아!'하고 울림이 옵니다.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틀을 벗어난 이 물음이야말로 詩의 기본 품새가 아닐까요. 전체적으로 밀도 있는 수사며, 흐름도 좋습니다. 또 이 시의 좋은 점은 자극적이라는 것이겠지요. "마리화나"부분이나 "파도가 동침한 흔적"부분이 그러한데, 그것이 작위적이지 않는 이유는 비유에서 오는 설득력 있는 설정이 참신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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