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신춘문예 당선시집』/ 김지혜 / 문학세계사
그런 것이 아니다
노파는 우격다짐하듯 보따리를 밀어 넣고 있었다.
자정 가까운 종로 5가
공기도 들 수 없을 만큼 꽉 들어찬 역내 물건 보관함
그곳에 무언가 자꾸 채워지고 있었다.
방금 전, 등심 두어 점과 마늘 반 조각의 상추쌈을
입에 넣고 우걱거리던 순간. 그 순간, 우걱거림에 문득
生 자체가 급하게 체해버린 것만 같던 순간. 그 순간, 뱉어낼 수도
더 이상 우걱거릴 수도 없는 울고 싶음의 막막함.
분명, 그런 것이 아니었다.
때 절은 손수건에 말았을 담배쌈지. 해지고 물 빠졌을
두어 벌의 정도의 몸빼바지. 가끔씩 입안을 들썩여줄
누우런 엿가락들. 입을 함구한 채 쑤셔 박히는
새로 틀지 못한 솜뭉치들.
분명,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보따리나 보관함에도 들지 못하는
어디서부터 꾸역꾸역 밀려오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허기 같은
그 시커먼 아가리 속
채워질 무언가가 더 남아 있다는 듯
노파는 쉽게 문 잠그지 못하고 등이 굽어 있었다.
[감상]
지하철 물품 보관함이 자신의 옷장인 노인. 아니 지하철 물품 보관함이 자신의 냉장고인 노인. 동전 몇 닢 끼워 넣으며 그 안에 무얼 그리 집어넣고 있는지, 노인의 굽은 등이 활시위처럼 당겨지며 밀어 넣는 풍경. 보신 적이 있으신지. 노인은 납골당 같은 그 안에 삶을 쑤셔 넣으며, 24시간을 동전으로 연명을 합니다. 이 시가 좋은 이유는 그 순간을 포착해냈다는 것이지요. "지하철 물품 보관함에 가면 잃어버린 내 추억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주접을 떨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