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8:20

윤성택 조회 수:1634 추천:217

『너무 아름다운 병』/ 함성호/ 문학과 지성사
    
                            

             너무 아름다운 병



           아프니?
           안녕 눈동자여, 은빛 그림자여, 사연이여
           병이 깊구나
           얼마나 오랫동안 속으로 노래를 불러
           네가 없는 허무를 메웠던지
           그런
           너의 병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어떤 무늬인지 읽지 않았으니
           아무 마음 일어날 줄 모르는데
           얼마나 많은 호흡들이 숨죽이고 있는지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압력
  
           휘청, 발목이 잘려나간 것처럼
           한없이 무너지고 싶다
           밥 먹어
           너의 아름다운 병도 밥을 먹어야지
           별다방 아가씨가 배달 스쿠터를 타고
           전화번호가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지나간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참혹한 욕망이 문지방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자
           너의 아름다운 병을
           검은 아스팔트까지 바래다주러 간다
           가면, 오래오래 흐린 강 마을에서
           집의 창을 만지는 먼지들과 살 너와
           돌아서면 까맣게 잊고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뿌릴 나는
           저리위- 독주에 취해 더 깊은 병을 볼 거면서
  
           먼 길로
           일부러 먼 길로
           너의 아름다운 병을
           오래오래 배웅한다
  


[감상]
병을 앓는 것이 때론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밤새 뒤척이며 심장 부근에서 아파 오는 통증, 어쩌면 그리움이 응어리진 것인지 아니면 슬픔이 단단한 옹이진 것인지 그렇게 아플 때가 있습니다. 이 까닭 모를 병을 이 시는 과감하게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을 붙입니다. 살아가면서 이 아름다운 병이 몇 번이나 찾아올까요? 혹시 지금 당신이 앓고 있는 것이 이 병이었을까. 일부러 먼길로 배웅하는 병. 청진기 같은 차가움이 바람으로 부는 겨울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71 소쩍새에게 새벽을 묻는다 - 심재휘 2002.08.07 1163 233
170 환청, 허클베리 핀 - 김 언 2002.08.30 1179 233
169 총잡이들의 세계사 - 안현미 [1] 2006.02.23 1612 233
168 뒤란의 봄 - 박후기 [1] 2006.04.01 1822 233
167 이 밤이 새도록 박쥐 - 이윤설 2006.12.20 1736 233
166 그러한 광장 - 정익진 2006.03.13 1523 234
165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2001.08.13 1763 235
164 가을에는 - 최영미 [3] 2001.08.31 2433 235
163 거품인간 - 김언 2005.05.18 1626 235
162 그 거리 - 이승원 2006.01.12 1938 235
161 기차는 간다 - 허수경 [2] 2001.08.01 1571 236
160 생크림케이크 - 조은영 2004.03.30 1519 236
159 주름들 - 박주택 [1] 2005.06.21 1380 236
158 홈페이지 - 김희정 [2] 2005.10.07 1698 236
157 이발소 그림 - 최치언 2006.01.18 1632 236
156 어느 가난한 섹스에 대한 기억 - 김나영 2006.07.04 2418 236
155 나귀처럼 - 김충규 2006.07.13 1749 236
154 모니터 - 김태형 2006.06.26 1563 237
153 움직이는 별 - 박후기 [1] 2003.12.04 1598 238
152 전생 빚을 받다 - 정진경 2005.12.20 1671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