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낮달 - 이영식

2002.04.08 11:33

윤성택 조회 수:1127 추천:189

낮달/ 이영식/ 2002 『문학사상』 4월호




          낮달



        거울 속보다 고요한 날
        양지바른 블록 담 아래
        노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빈 부대자루처럼 접힌 몸
        번갈아 의자에 부렸다 세우며
        명함판 사진을 찍습니다

        햇발도 참말 좋아
        잎새들 초록초록 혀를 내미는데
        이승의 끝자락, 마지막
        그 밤을 지킬 모습이라니!
        얼굴은 오래된 놋쇠빛이 되고
        끊었던 담배에 손이 자꾸 가는데
        주름 활짝 펴 웃으라는
        빵모자 사진사의 주문에
        덩굴장미만 벙글벙글 피어나는
        날도 억수 좋은 날

        영정(影幀)처럼 떠 있는 돛배 하나
        늙은 복사나무 가지에 걸립니다



[감상]
봄은 태어남의 계절이지만 여기 노인들이 맞는 봄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영혼을 담는 자루라는 시선과 "초록초록 혀를 내미는" 잎새의 표현이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봄날의 싱그러움을 노인들의 사진 찍는 모습에서 찾아낸 점이 인상적이네요. 봄은 아이들이나 청춘들에게로 오는 아니라, 이렇듯 노인들의 활짝 웃는 모습에도 온다는 사실. 새삼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51 뜬 눈 - 김연숙 2004.01.07 1130 201
250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30 220
249 공갈빵이 먹고 싶다 - 이영식 2002.12.09 1130 198
248 태양의 계보 - 홍일표 2007.11.05 1129 116
247 20세기 응접실 - 윤성학 2007.06.05 1129 155
246 욕을 하고 싶다 - 주용일 2003.06.20 1128 176
» 낮달 - 이영식 2002.04.08 1127 189
244 상계동 비둘기 - 김기택 2005.02.23 1126 163
243 寄生現實(기생현실) - 김중 2002.07.04 1126 215
242 순금 - 정진규 [1] 2002.05.06 1126 177
241 눈 내리니 덕석을 생각함 - 박흥식 [3] 2004.11.09 1124 164
240 달의 다리 - 천수이 [1] 2004.01.26 1124 175
239 귀명창 - 장석주 2008.01.25 1123 136
238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237 정전 속에서 - 서영미 2003.12.01 1121 191
236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1 219
235 용설란 - 최을원 2002.10.08 1120 218
234 현몽 - 함태숙 2002.04.29 1120 178
233 안개에 꽂은 플러그 - 이수명 2002.03.16 1118 178
232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17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