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 복도에서는 - 나희덕

2002.05.29 17:35

윤성택 조회 수:1321 추천:192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 창비시선


        이 복도에서는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울음마다에는 병아리 깃털 같은 결이 있어서
        들썩이는 어깨를 짚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병을 마악 알았을 때의 울음인지
        죽음을 얼마 앞둔 울음인지
        싸늘한 죽음 앞에서의 울음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마른 시냇물처럼 오래 흘러온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감상]
참, 시인의 눈을 새삼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종합병원에서 오래 앉아 있어본 경험을 이렇게 “울음”에 대한 감별로 시작하다니요. 그리고 또한 이런 깨달음을 “누구나”에게로 확대시킴으로서 공감의 울타리를 열어 놓았습니다. 아프지 말아야지요. 포르말린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지 말아야지요. 다들 그런 “감별사”가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51 너 아직 거기 있어? - 김충규 2002.06.15 1427 221
250 전봇대와 고양이의 마을 - 김언 2002.06.14 1332 224
249 몰입 - 고영민 2002.06.12 1313 216
248 소들은 울지 않는다, 웃는다 - 최금진 2002.06.11 1368 200
247 비닐하우스 - 조말선 2002.06.10 1273 210
246 카니발의 아침 - 박진성 2002.06.07 1250 219
245 이별여행 - 손현숙 2002.06.05 1355 211
244 해마다 - 윤이나 2002.06.04 1306 213
243 영자야 6, 수족관 낙지 - 이기와 2002.06.03 1114 182
242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 심재휘 2002.05.31 1311 178
241 내 안의 붉은 암실 - 김점용 2002.05.30 1211 193
» 이 복도에서는 - 나희덕 2002.05.29 1321 192
239 길 속의 길 - 김혜수 2002.05.27 1393 183
238 마음의 서랍 - 강연호 2002.05.24 1514 150
237 석양리 - 최갑수 2002.05.23 1157 182
236 필름 - 허연 2002.05.22 1451 199
235 바코드, 자동판매기 - 이영수 2002.05.21 1108 178
234 수사 밖엔 수사가 있다 - 최치언 2002.05.20 1164 209
233 잘못 온 아이 - 박해람 2002.05.17 1297 193
232 소나기 - 전남진 2002.05.16 1899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