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 김명인

2002.10.15 15:56

윤성택 조회 수:1423 추천:227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김명인 /『문학사상』(2002년 10월호)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강을 보면 안다, 저기 봐라, 긴 뿌리
        골짜기 깊숙이 감춰놓고
        줄기째, 줄기로만 꿈틀거려 여기 와 닿는.

        내리는 비도 주룩주룩 낼미면 하늘의 실뿌리 같고
        미루나무 숲길 듬성듬성한 저 강가 마을들
        세상의 유서 깊은 곁뿌리지만
        
        근본 모르는 망종(亡種)들처럼
        우루루 쿠당탕 한밤의 집중호우 몰려들어
        열댓 가구 옹기종기 마을 하나 깡그리
        부숴놓고 떠나간 자리, 막돼먹은 저 홍수가
        절개지의 사태(沙汰) 멋대로 끌고 와
        문전옥답까지 온통 자갈밭으로 갈아엎은 건
        순리도 치수도 모르는 어느 호로자식,
        산의 잔뿌리 마구 잘라낸 난개발 탓이리.
        오호, 허물어진 동구 앞 시멘트 다리 난간에 걸려서
        흘러가지도 일어서지도 못해 길게 드러누운 저것,
        고향의 길동무, 늙은 느티나무가 아니라
        깊디깊었던 우리들 마음의 뿌리인 것을!




[감상]
시인은 끊임없이 세상을 재해석하는 것에 소임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에도 뿌리가 있다니, 라고 고개를 저었던 생각이 다 읽고 나면 그렇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시가 좋구나 싶습니다. 홍수가 나면 물길은 인위적으로 막아 놓았던 수로를 넘어가 옛날 자신들이 흘렀던 곳으로 찾아갑니다. 마치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막무가내가 됩니다. 그러니 땅의 지형은 물에 있어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막지 마세요, 내 오랜 영혼의 뿌리를 찾아 그대에게 넘치고 있으니.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31 밤 골목 - 이병률 2002.11.12 1111 158
330 산촌 - 김규진 2002.11.08 1120 170
329 공사장엔 동백나무 숲 - 임 슬 [1] 2002.11.07 1074 167
328 감나무 전입신고서 - 이선이 2002.11.06 1023 185
327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연탄] - 이기인 2002.11.05 1119 172
326 개심사 거울못 - 손정순 2002.11.04 1025 170
325 스피드 사랑법 - 안차애 2002.11.01 1119 185
324 산 하나를 방석 삼아 - 이정록 2002.10.31 1068 173
323 나는 그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 정채원 2002.10.30 1118 181
322 그의 바다는 아직 살아 있다 - 박현주 2002.10.29 1152 180
321 겨울이 오는 첫 번째 골목 - 고찬규 2002.10.28 1207 182
320 벚나무, - 강미정 2002.10.24 1389 197
319 생의 온기 - 김완하 2002.10.23 1352 192
318 수선화 - 이재훈 2002.10.22 1237 205
317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1 - 박현수 2002.10.18 1333 209
316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1] 2002.10.17 1609 214
315 편지 - 송용호 2002.10.16 1744 213
»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 김명인 2002.10.15 1423 227
313 우체국 계단 - 김충규 [1] 2002.10.14 1351 192
312 근미래(近未來)의 서울 - 이승원 2002.10.11 1134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