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나무 한 그루』 / 안차애/ 문학아카데미 시선 166 (신간)
스피드 사랑법
새로 산 커피포트는 저돌적인 사내 같다
제 여자의 목마른 눈빛이나 심심한 여백을 용납하지 않는
힘 좋고 단순한 사내
나는 수시로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0.5 리터 찬물만큼의 시려움을 뚫고
그가 나에게 달려오는 시간은 정확히 18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보다 빠른 전력질주다
숨소리 점점 포르테 포르테시모
발자국 소리 시시각각 비바체 알레그로 비바체
렌토 아다지오 라르고, 느리고 감질나는 전위는 생략이다
그의 우유빛 몸체가 깊이 젖어드는 것이 먼저인지
숨차게 끓어오르는 클라이맥스, 폭발적인 몸짓이 먼저인지는
감동에 취해 나는 매번 헷갈린다
단순한 코드의 스피드 사랑
산뜻한 끝 매너에서 또 한번 매료된다
투명하게 뜨거운 몇 모금의 위로,
기꺼이 퍼 주고 식어 가는
[감상]
커피포트를 '저돌적인 사내'로 이어가는 흐름이 흥미롭습니다. 빠르게 끓는다는 작용에서 욕망의 근원까지 꿰뚫는 통찰이 번뜩입니다. 단순하고 산뜻한 사랑의 이면에는, 물질과 속도에 대한 역설적인 풍자가 깃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