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빵이 먹고 싶다』/ 이영식 / 문학아카데미 (2002, 신간)
공갈빵이 먹고 싶다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 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감상]
따뜻한 시집이 나왔네요. 시인의 홈에서 슬쩍 빌려온 이 시에 대한 후일담을 들어봅니다.
― 창동역, 다람쥐 쳇바퀴 돌듯 출퇴근하다가 가판대에서 설탕을 녹여 별자국 찍어놓는 여인을 보았다. 온 정성으로 하늘의 별을 지상에 불러내 설탕 반죽 위에 새겨 넣고 있었다. 그날 저녁상을 물리고 아내와 함께 역전에 나가 오백 원짜리 두 개의 별을 샀다. (거스름돈은 어린 계집아이가 계산해 주었다) 침을 발라 조심스레 설탕을 녹이며 그 별자리를 지니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 내 별의 꿈은 허리를 끊기고 말았다. 온전히 별을 그려 낸 아내의 승리였다. 그후 언제부터인가 여인은 빵을 굽고 있었다. 온몸이 터질 듯 세상 밖으로 부풀어오르는 빵. 하늘 저 높은 자리, 누군가 지긋이 눌러주지 않으면 금세 터질 것만 같던 공갈빵. 나는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속 빈 빵을 오백 원에 다시 사면서 여인이 벙어리인 것을 알았다. 그날 밤 시가 나를 불렀다.
내가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하고 다시 포장마차를 찾았을 때 그 자리는 공갈빵처럼 텅- 비어있었다. 내 시 한자락 건져 주고 여인은 바람이 되었는가. 평생, 내가 갚을 길 없는 빚을 멍에처럼 던져주고 간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