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수레」/ 안시아/ 『현대시학』2003년 4월호
노인과 수레
노인은 내리막길처럼 몸을 접는다
밤새 쌓인 어둠을 수거하고
수레 위 차곡차곡 재활용 상자를 쌓고 있다
상자마다 뚜렷이 접힌 흔적들
그 角이 포개져 품을 만든다
바퀴가 회전할 때마다
노인의 야윈 마디가 함께 맞물려 삐꺽거린다
어떤 세월이 구부러진 角을 만든 것일까
곧게 내리던 하얀 눈들도 굽은 등위에서
한번 더 미끄러지고 있다
구부러진 길이 골목을 품듯,
노인은 점점 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수레 위 차곡차곡 접힌 生이 묵직하다
헉, 헉 뜨거운 입김이 골목을 큰길로 끌어내고 있다
품 가득 곧, 햇살이 안겨올 것이다
골목을 다 빠져나올 무렵
축이 닳은 바퀴가 성급히 회전을 한다
끌어온 길을 축으로 힘껏 잡아당길 차례다
노인은 마지막 角을 그려내고 있다
[감상]
눈 내리는 겨울 새벽, 한 노인이 리어카에 파지를 싣는 모습이 선합니다. 아시다시피 작은 리어카에 파지를 싣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파지의 각을 반듯하게 접어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런 '角'에서 삶을 발견해내는 상상력이 이 시의 큰 장점이겠지요. 이 밖에 여타 다른 작품들에서는 '섬'과 '바다'에 대한 모색이나 그리고 잊혀져 가는 것들, 일상의 소도구들에 대한 투영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주목해도 좋을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