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점심」/ 이지현/ 『시현실』2003년 봄호
때늦은 점심
눅눅한 밥집 골목 위로 기우는
시든 태양의 머리채
잘 구겨지는 바람들만 들락거리는 그 곳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는다 기억 바깥에서
누군가 머물다 떠난 철제 의자가 삐걱이고
물 묻은 손바닥에 쓸쓸함을 들여다보는 한낮
어쩌면 이미 오래 전에 짐작했던 이 시간은
벌써 나를 지나간 이 시간은
누구의 환상일까
물을 두고 가는 주인의 낯은 영원처럼 아득하다
이제 나는 조금씩 모서리가 스러지는데
물징개미처럼 그대 다녀간
이 꿈의 모서리도 나달거리는데
사랑아
빌어먹을 사랑아
나는 왜 아직 허기지는가
[감상]
그대가 떠난 후 혼자서 밥을 먹어 본 적 있는지요. 이 시를 읽다보면 홀로인 쓸쓸함이 행간마다 배여 있습니다. 추억조차 환상으로 되어버리다니요. 이 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동적인 현실에 대해 일갈해버립니다. '빌어먹을 사랑아' 이 안에 내포된 의미들이 넘실대며 은은한 여운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