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교실」 / 김경후 / 『현대문학』2003년 5월호
천막교실
1
섣달 도끼바람이 내리치던 날
나는 왜 그곳에 갔을까
청회색 건물 옥상의 천막교실
하루종일 휘펄떡이는 문 안에서
우릴 가르친 건 하천 돌바람이었다
얼어터진 손은 바람의 말을 백 번씩 마냥 받아썼다
내려갈래 뛰어내릴 거야
공책을 찢어 종이계단으로 만들 때마다
난 입에 종이뭉치를 물어야 했고 다 삼킬 때까지
텅 빈 천막에서
연탄난로와 함께 식어갔다
2
해질 녘 안양천 다리 아래
그날도 얼룩그림자 몇, 사내들의 웃음소리와
목에 줄을 처매고 날뛰는 개 한 마리
작은 텐트 옆에선 벌써 불길이 거세어졌지만
몽둥이질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고깃덩이에서 튀어오르는 핏방울들
으스러지는 뼛소리
하천 바람은 자갈에 묻은 피를 혓바닥으로 서서히 핥고 있었다
저 혓바닥이 내일 날 가르치러 올 거야
난 신주머니를 팽팽 돌렸다
살 찢겨 울부짖는 개의 소리가 울리는 현악기를 갖고 싶어
태풍의 눈 한가운데 박혀 하루종일 켤 거야
난 개같이 짖으며 끝없이 달렸다
3
버렸다
매일 이름을 지운 시험지들을
산수책의 수많은 연산상자를 그리고
불에 그슬린 개털의 냄새를
하지만 잊어버리자마자
그것들은 바람의 뒷주머니에서 다시 튀어나왔다
아직 풀 수 없는 괄호들을 달고
난 내가 버린 것들을 믿지 않는다
버렸다는 걸 믿지 않는다
아직 난 주홍색 천막 안에서
종이계단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
[감상]
으스스한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상황과 내용을 이해해보는데 옥상 천막에 도살될 개의 막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개를 태우게 될 공책들은 그 집의 아이의 것이겠지요. 그 겨울, 아이가 옥상에 올라갔다가 적잖이 놀란 풍경을 이 시는 각인합니다. 어쩌면 그 추위에 굶주린 개가 먹고 있었던 것은 아이의 산수책이었을지도 모르고요. 적절한 공포와 환상이 빚어내는 감각이 섬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