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는 시간」 / 전남진 / 2003년『시와 사상』여름호
되돌아가는 시간
할머니는 천천히 돌아가고 계신다
올 봄은 지난 봄으로 가고
올 진달래도 지난 봄으로 간다
마당에 핀 작은 목련도 지난해나 혹은
어느 먼 처녀적 마을로 돌아간다
돌아가다 잠깐씩, 어떤 날은 아주 오랫동안
가던 길을 선명하게 밟으며 돌아오신다
돌아가기에 올 봄이 너무 환했을까
돌아와 꽃잎 뜯어내듯
다시 가까운 과거부터 잃어버리고
먼 과거로 사뿐사뿐 걸어가신다
가시다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시집온 그날로 가마 타고 가신다
가시다 돌아보면 아득한 얼굴들
어느새 되돌아와 식구들의 손을 들여다 보신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할머니는 그리운 어느 한 시절로 가고 계신다
언덕 넘어 개울 건너
내가없던 그때로 가고 계신다
[감상]
흔히 죽음을 맞이한 고인에게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시의 표현만 같습니다. 미래가 과거로 이어져 결국 우리가 되돌아가는 시간은 과거의 한 정점, 태어나기 이전의 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교적 사유도 엿볼 수 있고요. 돌아가신 할머니는 사진첩에서 보았던 흑백의 풍경들, 사람들. 그 사진의 시간을 지나 지금은 어디까지 가셨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