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 / 윤성학 / 『창작과비평』2003년 여름호
내외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감상]
일상에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을 시로 풀어내는, 깊이 있는 주제로 만들어내는 조형능력이 좋다고 할까요. 시 안에서의 '그녀'가 갖는 성격이 참 인간적이어서 공감이 갑니다. 바위 근처에서 무서운 것이 나타날까봐 가까이 있길 바라면서도, 한편 하얀 엉덩이가 보일까 떨어져 있길 바라는 그 간극의 거리. 슬며시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