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사랑 기계』/ 김혜순/ 문학과 지성사
눈물 한 방울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집어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
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
다. 그가 방을 대물 렌즈 위에 올려놓는다. 내 방보다 큰 눈이 나를 내려다
본다. 대안 렌즈로 보면 만화경 속 같을까. 그가 방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훅훅 불어보기도 한다. 그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터뜨려지기 쉬운 방이 마
구 흔들린다.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빡이는 하늘이 다
가든 것만 같다. 그가 렌즈의 배수를 올린다. 난파선 같은 방 속에 얼음처
럼 찬 태양이 떠오르려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장롱 밑에 떼지
어 숨겨놓은 알들을 들킨다. 해초들이 풀어진다. 눈물 한 방울 속 가득 들
어찬, 몸속에서 올라온 플랑크톤들도 들킨다. 그가 잠수부처럼 눈물 한 방
울 속을 헤집는다.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한밤중 일어나 앉아 내가 불러낸 그가 나를 마구 휘젓는다. 물로 지은 방
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터진다. 눈물 한 방울 얼굴을 타고 내려가 번진다.
내 어깨를 흔드는 파도가 이 어둔 방을 거진 다 갉아먹는다. 저 멀리 먼동
이 터오는 창밖에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나간다.
[감상]
말미 눈물의 형상화가 대단합니다. 눈물이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니요. 새벽 무렵 깨어 내내 그를 생각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표현들을 낯설게 현미경적 관찰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독특합니다. 마지막 무료한 일상으로 치환시켜버리는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나'는 풍경은 객관적 시점의 점프 컷처럼 큰 틀의 변용을 주고 있고요. '눈물 한 방울'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