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눈물 한 방울 - 김혜순

2003.07.08 16:55

윤성택 조회 수:1433 추천:199

『불쌍한 사랑 기계』/ 김혜순/ 문학과 지성사



        눈물 한 방울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집어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
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
다. 그가 방을 대물 렌즈 위에 올려놓는다. 내 방보다 큰 눈이 나를 내려다
본다. 대안 렌즈로 보면 만화경 속 같을까.  그가 방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훅훅 불어보기도 한다. 그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터뜨려지기 쉬운 방이 마
구 흔들린다.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빡이는 하늘이 다
가든 것만 같다. 그가 렌즈의 배수를 올린다. 난파선 같은 방 속에  얼음처
럼 찬 태양이 떠오르려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장롱 밑에 떼지
어 숨겨놓은 알들을 들킨다. 해초들이 풀어진다. 눈물  한 방울 속 가득 들
어찬, 몸속에서 올라온 플랑크톤들도 들킨다. 그가 잠수부처럼 눈물 한 방
울 속을 헤집는다.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한밤중 일어나  앉아 내가 불러낸 그가 나를 마구 휘젓는다.  물로 지은 방
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터진다. 눈물 한 방울  얼굴을 타고 내려가 번진다.
내 어깨를 흔드는 파도가 이 어둔 방을 거진 다 갉아먹는다.  저 멀리 먼동
이 터오는 창밖에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나간다.



[감상]
말미 눈물의 형상화가 대단합니다. 눈물이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니요. 새벽 무렵 깨어 내내 그를 생각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표현들을 낯설게 현미경적 관찰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독특합니다. 마지막 무료한 일상으로 치환시켜버리는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나'는 풍경은 객관적 시점의 점프 컷처럼 큰 틀의 변용을 주고 있고요. '눈물 한 방울'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71 포도를 임신한 여자 - 장인수 2003.08.12 1086 180
470 새벽 세시 - 진은영 2003.08.09 1302 162
469 누와르론(論) - 박수서 2003.08.07 989 149
468 산란 - 정용기 2003.08.01 997 167
467 붉은별무늬병 - 홍연옥 2003.07.31 1063 181
466 골목길 - 박남희 2003.07.30 1382 192
465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60 220
464 불안에 대하여 - 임동윤 [1] 2003.07.26 1240 184
463 구부러지는 것들 - 박용하 2003.07.24 1212 176
462 오래된 우물 - 서영처 2003.07.23 1190 189
461 조개 - 박경희 2003.07.22 1268 214
460 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 이성복 2003.07.21 1349 190
459 광릉 뻐꾸기 - 배홍배 2003.07.15 1039 198
458 기침 - 이윤학 [1] 2003.07.11 1396 213
457 농담 - 이문재 2003.07.10 1371 211
45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114 221
» 눈물 한 방울 - 김혜순 2003.07.08 1433 199
454 피라미와 피라미드 - 이승하 2003.07.07 1004 196
453 밤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 - 김충규 2003.07.05 1084 186
452 신발 - 최두석 2003.07.03 1315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