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박경희/ 『시와 사람』 2003 여름호
조개
조개에도 나이테가 있다
파도를 품고 갯벌을 파고드는 힘으로
조개는
나이를 먹는다
손끝으로 건드리면
이내 몸을 닫아버리는, 쏜살같은
생
조개가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흩어져 버릴 파도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 끝으로 사라지는 통통배처럼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는
푸른 섬처럼
주둥이 꽉 다물고 오지게
나이만 먹고 있는
보드라운
여자, 조개
[감상]
조개껍질의 무늬를 나이테로 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지요. 또 단순한 착상에 그치지 않고 나이를 먹는 이유에 대해 조개의 생태와 연관지은 설득력도 공감이 갑니다. 여자를 조개로 비유하는 것은 익히 상투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릇 상투적인 것이 잘 만들어진 작품을 낳는 법입니다. 다만 표현의 상투성을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중요한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