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전윤호/ 『시인세계』2003년 가을호
연애소설
사내가 큰 거 한 건 노리고
헛손질하는 동안
그녀는 책을 읽네
가난한 소녀가 자라서
아름다운 처녀가 되고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다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연애소설은 행복하지
정리해고도 없고
부도난 어음도 없는
반드시 예정된 행운이 숨어 있는 세상은
예정된 행복한 결말처럼
교훈적이야
지금 눈앞에 닥친 어려움은 단지
둘의 사랑을 단단하게 만들려는 복선일 뿐
사내는 소주를 마시고
그녀는 책을 읽네
도중에 멈춘다 해도
끝이 궁금하지 않다네
[감상]
희망의 가장 밝은 부분,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의 연애소설을 통해 현실과의 거리를 이해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편안한 언어로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가 낭만적일 수만은 없겠지요. 얼마나 현실을 지탱하느냐에 따라 치열성과 감상성과의 구별이 이뤄지는 것이겠고요. 그러나 '도중에 멈춘다 해도/ 끝이 궁금하지 않'은 삶은 얼마나 지루한 인생일까요. 그러니 절망 속에는 슬픔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